의인 이수현 20주기…인간애를 기억·계승하는 일본인들
"개인교류 쌓은 관계, 한일관계 악화해도 안 무너진다"
"정의로운 행동에 큰 충격…교과서에도 나온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의인 이수현(1974∼2001) 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지 26일로 20년이 된다.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고인은 2001년 1월 26일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 소재 JR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한일 양국 사회에 감명을 줬고 많은 한일 관계가 어려워진 가운데 고인의 행동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20주기를 앞두고 고인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람의 마음 이을 수 있다는 것 전하고 싶었다"
고인을 사람들의 기억에 새기는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나카무라 사토미(中村里美) 감독이다.
그는 이수현을 소재로 한 영화 '가케하시'를 제작해 2016년부터 선보였다.
2편까지 제작해 일본 곳곳에서 상영했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시 중단되기는 했으나 3편도 제작 중이다.
나카무라 감독은 생전의 이 씨와 교류가 있었으나 처음부터 고인에 관한 영화 제작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했던 아들의 뜻을 이어 일본에 유학 온 각국 학생을 한결같이 지원하는 이 씨 부모의 모습을 보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나카무라 감독은 화상회의 시스템 '줌'을 이용한 연합뉴스의 인터뷰에서 고인을 "영웅시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없이 누구든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며 "평화 씨앗을 뿌리는 활동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이 세상에 남긴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천착해 온 그는 "뉴스나 보도를 보면 (한일 관계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교류로 관계를 쌓은 사람에게는 한일 관계가 악화했다고 관계가 무너지는 것은 없다"는 믿음을 피력했다.
◇ "인간애 보여준 훌륭한 행동…교과서에도 나온다"
이 씨가 다녔던 아카몬카이(赤門會)일본어학교의 아라이 도키요시(新井時贊) 이사장은 고인이 졸업 후 유학을 오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재학 중 어학연수를 온 것이라서 인상적이었다며 "그림처럼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씨가 친구가 많았고 리더와 같은 존재였으며 열심히 공부한 것은 물론 문화에도 매우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아라이 이사장은 사고 당일 신주쿠(新宿)경찰서로부터 "아무래도 귀교의 학생인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 이 씨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는 "그의 인간애, 정의로운 행동은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중략) 정말 인간으로서 훌륭한 행동이었다"며 "지금도 (일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나 중학교 수업에서 이수현에 관해 다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라이 이사장은 이씨가 비록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이씨의 행동에 감명을 받은 많은 일본인 등에 의해 그의 뜻이 계승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보통은 자식이 부모의 뜻을 이어가지만 우리들은 수현이의 뜻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씨 부모의 의지가 일본에서의 장학회 사업으로 이어졌고 올해 10월이면 수혜자가 1천 명을 넘는다고 전했다.
그는 "이는 이수현의 용기 있는 행동은 물론 뜻을 이어 활동해온 부모의 인덕과 일본의 지원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역사·도덕의 필터로 거르지 말고 개인을 보자"
2019년 부산에 있는 이 씨의 묘소를 참배하고 이 씨의 어머니를 만난 일본 대학생 가네무라 나나코(金村菜菜子) 씨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을 구하려고 한 것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악화한 한일 관계에 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서 양국 간에 인간적인 교류와 공감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최근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국가나 국적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역사나·도덕 같은 필터로 거르지 말고 개인으로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네무라 씨는 이 씨가 사람을 구하러 선로에 뛰어들 때 "'한일 우호를 위해 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앞에 있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생각에서 의로운 행동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보조:무라타 사키코 통신원)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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