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이재용 2년6개월 실형 과했다?…양형기준 따져보니
리얼미터 조사서 46% "과하다"…24.9% "가볍다", 21.7% "적당"
양형기준안의 집행유예 요건 충족 못했다는게 재판부 판단
'2년6개월'은 법정형 범위에 '턱걸이'…양형기준안의 형량범위 보단 낮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70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빼돌려 뇌물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항소심(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선고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에 대해 평가가 엇갈린다.
지난 20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부회장에게 선고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과하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46.0%로 집계됐다.
반대로 '가볍다'는 응답은 24.9%에 그쳤다. '적당하다'는 21.7%, '잘 모르겠다'는 7.5%로 집계됐다.
국민 절반 가까이가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이 '과하다'고 생각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오자, 법원의 형량 결정이 어떤 기준에 따라 이뤄졌는지로 관심이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이 부회장이 사회에 기여하는 점을 감안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어야 했다"라거나 "대통령이 (뇌물을) 달라고 하는데 안 준다고 버틸 기업가가 도대체 있기나 하나? 2년 6개월의 형량은 너무 과하다"는 등의 반응도 나온다.
◇ 파기환송심서 집유 왜 날아갔나…양형기준안의 기준 충족 못했다는게 재판부 판단
형량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집행유예'였던 기존 항소심(2018년 2월 5일 판결) 형량이 실형으로 바뀐 것 자체가 과도했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선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파기 전 항소심에서 선고된 집행유예 대신 실형을 선고한 것이 어떤 기준에 입각한 것인지 먼저 따져 볼 필요가 있는데, 그러자면 유죄가 인정된 이 부회장의 혐의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현행 형법 해석에 따르면 집행유예 여부는 피고인의 혐의 사실이 복수일 경우 해당 죄목의 법정 형량이 가장 무거운 혐의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혐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회삿돈 70억5천281만원을 빼돌려(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0억원 이상 횡령), 이를 이른바 '비선실세'로 불린 최순실 씨에게 뇌물로 줬다(뇌물공여)는 것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0억원 이상 횡령은 법정형이 '징역 5년∼무기징역'인데 반해 뇌물공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따라서 가장 무거운 혐의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에 대한 법원의 집행유예 기준을 살펴봐야 한다.
법원은 각 범죄별 집행유예 기준을 '양형기준안'에 규정해놓았는데, 이는 집행유예 결정에 유리한 사유인 '주요긍정사유'와 불리한 사유인 '주요부정사유'로 구성된다.
양형기준안에 따르면 재판부가 인정한 주요긍정사유 개수가 주요부정사유 개수보다 2개 이상 많아야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한다.
횡령죄 집행유예 기준 중 주요긍정사유는 ▲ 사실상 압력 등에 의한 소극적 범행 가담 ▲임무위반 정도가 경미한 경우 ▲ 자수 또는 내부비리 고발 ▲상당 부분 피해 회복된 경우 ▲ 실질적 1인 회사나 가족회사 ▲ 실질적 손해의 규모가 상당히 작은 경우 ▲ 피해자 측의 처벌불원 등이다.
주요부정사유는 ▲ 동종 전과가 있는 경우 ▲범죄수익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경우 ▲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한 경우 ▲ 미합의 ▲ 실질적 손해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경우 ▲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 등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주요긍정사유로 '소극적 범행 가담'과 '피해 회복', '처벌불원' 등 3개를 인정했다.
횡령해서 뇌물로 사용한 회삿돈이 70억원이 넘기 때문에 '경미한 임무위반'이나 '상당히 작은 실질적 손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자수 또는 내부비리 고발'이나 '실질적 1인 회사' 등과 같은 집행유예 긍정사유도 이 부회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결론냈다.
재판부는 또 주요부정사유로는 '매우 불량한 범행수법'과 '큰 규모의 실질적 손해'를 인정했다.
승계작업을 위한 뇌물로 쓸 자금을 회삿돈을 빼돌려 조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불량한 범행수법이 인정됐다. 7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횡령한 만큼 당연히 큰 규모의 손해도 인정됐다. '동종 전과'나 '범죄수익 은닉', '미합의', '심각한 피해 야기' 등과 같은 부정사유는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가 '있다'고 판단한 주요긍정사유와 주요부정사유의 개수 차이가 1개에 불과해 집행유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재판부가 양형기준안에 따라 각 사유들의 해당 여부를 판단한 결과, 집행유예로 결정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그런 점에 입각해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2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할지 말지는 재판부의 재량이지만 아무래도 양형기준안이 정한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사건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면 더 논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2년6개월' 형량은?…법정형에 입각해 언도할 수 있는 형량 범위에 '턱걸이'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한 다른 논란거리는 재판부가 선택한 징역형 기간에 대한 것이다.
이 부회장의 혐의 사실 중 형량이 가장 무거운 부분인 '50억원 이상 횡령'의 법정형은 '징역 5년∼무기징역'이다.
다른 범죄 혐의를 함께 재판받는 경우엔 형법 38조에 따라 법정형 상한을 절반 가중해야 하는데, 횡령죄의 법정형 상한이 이미 무기징역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경우엔 별 의미가 없다.
여기에 법정형 하한이 징역 5년이지만 피고인에게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형을 절반으로 감경(작량감경)해줄 수 있도록 한 형법 53조에 따라 이 부회장의 최종 법정형 범위는 '징역 2년 6개월∼무기징역'이 된다.
이 부회장은 '범행이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소극적으로 행해진 점'과 '피해가 모두 회복된 점' 등이 형법 53조의 '참작할만한 사유'로 인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파기환송심이 선택한 징역 2년 6개월은 법에 따라 이 부회장에게 선고할 수 있는 최저 형량인 셈이다. 결국 법정 형량에 비춰 보자면 이 부회장 형기가 '과하다'는 주장은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 양형기준안은 '징역 4∼7년' 권고…권고형 범위보다 낮은 형량 선택
이 부회장의 형량은 법정형 측면에서는 어쨌든 선고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지만, 법원이 자체적으로 정한 '양형기준안'에 비춰보면 낮은 쪽으로 '범위 밖'이었다.
양형기준안은 50억원 이상 횡령의 기본 형량 범위를 징역 4∼7년으로 설정해놓았다. 양형기준안에 따라 형량을 감경할 경우엔 '징역 2년 6개월∼5년', 가중할 경우엔 '징역 5∼8년'이 권고된다.
이 부회장의 경우 횡령한 금액을 모두 반환했고 피해자인 삼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 감경사유로 인정됐다.
하지만 회삿돈을 횡령해 뇌물로 공여하고 기업 승계작업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하는 등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하다는 점이 가중사유로 인정됐기 때문에 원칙대로 했다면 기본형량에서 감경이나 가중이 없어야 할 사안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와 같은 이유로 '기본 형량 범위'(징역 4∼7년)가 적절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최종 선택한 2년6개월 형은 기본 형량 범위 중에서 최저인 징역 4년보다 1년 6개월 더 낮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부회장의 범행이 수동적·소극적으로 이뤄졌고, 피해가 전부 회복됐는데도 징역 4년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양형기준안 자체가 권고적 성격만 갖기 때문에 이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 결함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원이 스스로 정한 형량 관련 자체 기준을 낮춰가면서까지 선처한 것이기에 형량이 과했다는 주장에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점이 재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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