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기가 런던 맞아?'…변이 바이러스 습격에 적막감만

입력 2021-01-24 09:09
수정 2021-01-24 09:33
[르포] '여기가 런던 맞아?'…변이 바이러스 습격에 적막감만

지난 5일부터 3차 봉쇄조치…호텔·식당 등 문 닫고 기업 재택근무

화려한 명품 숍도 셔터 내려…관광명소에는 인적 '뚝'

'시티 오브 런던' 뱅커들 사라져…한국 주재원들만 사무실 지켜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센트럴 런던의 그린 파크 지하철역을 나서면 바로 오른쪽으로 리츠 호텔(The Ritz London)이 서 있다.

1906년 문을 열 때부터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호텔 중 하나로 알려졌고, 여전히 런던을 상징하는 최고급 호텔로 유명하다.

영화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가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 간 줄리아 로버츠를 인터뷰하는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도 바로 리츠 호텔에서다.

그러나 지난 15일(현지시간) 그린 파크 역을 나서자 만난 리츠 호텔의 고풍스러운 현관도, 주변의 창문에도 모두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리츠 호텔과 리츠 레스토랑, 리츠 클럽이라고 적힌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법할 정도였다.

지난해 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14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닫았던 리츠 호텔은 최근 영국 정부의 3차 봉쇄조치로 또다시 영업을 중단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기존보다 전파력이 70%나 강한 변이 바이러스 발견 사실을 공표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 세계 각국도 영국에 대해 속속 문을 걸어 잠갔다.

결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새해 들어 지난 5일부터 잉글랜드 전역에 3차 봉쇄조치를 도입했다.

비단 적막에 싸인 곳은 리츠 호텔뿐만이 아니다.



리츠 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메이페어 지역은 각종 명품 숍, 고급 호텔 및 식당이 즐비한 곳이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차량과 부유층들로 붐비던 메이페어에도 인적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샤넬, 구찌, 롤렉스, 프라다 등 이곳에 위치한 수많은 명품 숍의 문 역시 굳게 닫혀 있었다.

명품 시계 브랜드인 예거 르쿨트르와 명품 주얼리·시계 브랜드 카르티에 매장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입구에는 영업하지 않는다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버추얼 쇼핑(virtual shopping·가상쇼핑)을 위해 출근한 몇 명의 직원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인근 비스포크(bespoke·맞춤형) 양복점 거리인 새빌 로(Savile Row)에도 흐린 영국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배경이 된 양복점 '헌츠맨 앤드 손'(Huntsman & Sons)을 비롯해 이 지역에 자리 잡은 12∼13곳의 고급 양복점에는 수십 년간 영국 왕실 등 세계적인 유명인사와 부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드레스를 만들었던 '하디 아미스'(HARDY AMIES)의 양복점이 폐업하는 등 새빌 로 거리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이곳 양복점 '캐드 앤드 더 댄디'(Cad & the Dandy)에서 일하는 한국인 테일러 김동현씨는 "사실상 모든 업체가 문을 닫은 채 기존 주문들만 소화하고 있다"면서 "영업직은 대부분 해고를 당했고, 나이가 많은 테일러들은 정부 '고용 유지 계획'에 따라 휴직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김씨는 코로나19 영향이 길어지면서 비스포크 양복에서 기성복이나 홈웨어 등으로 눈길을 돌리거나, 화상으로 피팅(가봉)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변화가 이곳에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걷다 보니 화려한 전광판으로 유명한 피커딜리 서커스에 도착했다.

뉴욕 타임스퀘어와 쌍벽을 이루며 세계적인 기업 등이 앞다퉈 광고를 내거는 곳이다.

여전히 각종 광고가 현란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 했던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행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피커딜리 서커스를 돌아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한국, 베트남 식당까지 100곳이 넘는 세계 각국의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안 음식을 즐기는 런던 현지 주민, 센트럴 런던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에다 관광객들까지 겹치면서 늘 빈 자리를 쉽게 찾기 힘든 곳이었지만 지금은 재난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배달 가방을 뒤로 메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채 바쁘게 오가는 배달원들만이 아직 도시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줬다.

3차 봉쇄조치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거의 사라지면서 배달 및 포장 영업마저 포기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한 한국계 기업 관계자는 "그래도 연말까지는 인근 한국식당 등에서 배달이나 포장 주문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새해 들어서는 아예 이들 식당도 문을 닫아 햄버거나 간단한 음식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런던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런던 중심가의 경우 식당 등의 임대료가 무척 비싼 상황"이라며 "뉴몰든 한인타운에 있는 업체보다 시내 한식당 등이 임대료 부담이 커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을 나오면 레스터 스퀘어로 이어진다.

이곳은 오데온 럭스 등 여러 대형 극장에서 할리우드 영화 등 각종 시사회를 개최해 영국 내 영화산업 1번지로 불린다.

널찍한 광장은 평소 비보이와 각종 연주자, 뮤지컬 관람을 위해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기도 했다.

여기 한쪽에 자리 잡은 M&M 월드, 레고랜드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과 관광객들로 늘 긴 줄이 늘어섰다.

그러나 이날 레스터 스퀘어 전체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오히려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마치 원래부터 이 공간의 주인인 양 활개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피해야 하는 코로나19 시대를 비웃듯, 비둘기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몸을 기대고 있었다.

런던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 역시 봉쇄조치로 아침 시간이면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수많은 뱅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미국 뉴욕, 아시아 홍콩 등과 함께 런던이 글로벌 국제금융센터 역할을 하는 것도 '시티 오브 런던'의 존재 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의 현지 법인이나 지점 수십 곳의 사무실도 이곳에 몰려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부분 영국 현지 채용 직원을 재택근무로 돌리고, 한국 주재원들이 번갈아 가며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워털루 기차역과 '시티 오브 런던'을 잇는 지하철 노선이 중단되면서 주재원들은 우회 노선을 찾아 힘겹게 출근하고 있다.

한 국내 금융기관 현지 법인장은 "영국 정부가 재택근무를 권고한 상황에서 현지 직원을 출근하도록 했다가 코로나19에 걸리기라도 하면 소송을 제기할 우려가 있다"면서 "한국이나 일본계 금융기관은 자국 직원들이 번갈아 출근하면서 필수 업무를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해와 달리 영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수만 명에 달하면서, 현지 교민이나 주재원 중 감염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에 따른 위험이 큰 만큼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런던의 살인적인 주차비와 혼잡통행료 등이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계 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전 봉쇄조치 때와 달리 지금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워낙 많이 나와 사무실 출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전과 달리 자가용을 이용한 출근과 재택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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