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공화당의 뒤늦은 후회…미국 대통령제의 민낯?

입력 2021-01-17 07:07
[특파원 시선] 공화당의 뒤늦은 후회…미국 대통령제의 민낯?

트럼프 대선불복, 법원서 판판이 깨져도 두둔 또는 침묵

결국 대선 지고 의회 소수당 전락 '공멸'…"나아질거라 생각한게 실수"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공화당이 뒤늦게 후회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최근 기사에서 전한 공화당 의원들의 분위기다. 공화당은 작년 11월 민주당에 대권을 빼앗긴 것은 물론 의회의 상·하원 선거도 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불복한 이래 줄곧 의아한 부분은 공화당의 태도였다.

법원은 60건이 넘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소송 중 별 의미 없는 1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를 기각했고, 대부분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이 근거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이에 눈을 감은 듯 애써 트럼프 대통령을 두둔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통령을 엄호하고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것이 여당의 역할이라지만 납득하기 힘든 주장을 계속할 때는 그래도 입바른 소리나 반대 목소리가 분출할 줄 알았다.

더욱이 전 세계에 민주주의 전파를 핵심 사명 중 하나로 삼는다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말해온 미국 아니었던가.

다수결과 승복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대선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 권한의 정당한 행사라고 방어하거나 혹은 못 본 척 침묵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태도는 영 미국답지 않아 보였다.



어느 순간 대통령제 국가에서 여당 의원의 피하기 힘든 숙명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그것도 탄탄한 골수 지지층을 확보한 대통령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40%를 넘나드는 충성 지지층이 있었다.

대선 패배는 경합주의 초박빙 승부 끝에야 결정됐고, 7천400만 표 득표는 역대 모든 대선 후보를 통틀어 이번 대선 승리자인 조 바이든 당선인 다음으로 많은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도전설이 흘러나오고 아직 당내에서 그를 대적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의원들이 부정선거 주장을 반박하며 충돌을 선택하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지막지한 비난과 함께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키자'는 트윗을 마구 올려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성을 생각하면 직언은 큰 출혈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 됐을 터다. 가만있으면 본전은 챙기는데 말이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공화당 의원들의 이런 취약성을 간파하고 여당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공화당은 상·하원 모두 소수당으로 전락하는 공멸로 끝났다.

한 공화당 상원 의원은 더힐에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사, 입법과 관련된 일 모두에 더 반대했어야 한다"며 "우리의 실수는 항상 그가 더 나아지리라 생각했다는 점"이라고 뒤늦게 후회했다.

만약 공화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나갔다 싶을 경우 반대 목소리를 내며 적절히 견제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최악의 의회 난동 사태를 부추긴 혐의로 하원에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는 불명예는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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