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6시간…의회난입에 애타게 찾았지만 트럼프는 없었다
백악관서 TV로 생중계 지켜봐…"시청 못 멈춰 연락 안돼"
사태 심각성 늦게 알아…보좌진 설득 끝 겨우 '트윗'
부통령이 대응 '대행'…"부통령 안위 확인 안해"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친(親)트럼프 시위대가 미국 민주주의 심장부 의사당을 짓밟았던 6시간 동안 사태를 촉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과 15명의 보좌진, 상·하원 의원, 공화당 관계자를 취재해 대통령이 사라졌던 6시간을 재구성해 12일(현지시간) 전했다.
◇ '의회로 행진' 선동 뒤 백악관으로…생중계 보느라 연락 안돼
지난 6일 벌어진 초유의 의사당 난입사태 시작은 그날 오전 백악관 인근 엘립스공원에서 열렸던 트럼프 지지자들 집회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장남 트럼프 주니어, 차남 에릭 등은 이날 집회 연단에 올라 참가자들에게 싸워달라고 주문했다.
정오께 연단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 주장을 반복한 뒤 백악관에서 의사당으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로 행진하자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2시께 의사당을 침입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연설과 달리 의사당에 가지 않고 오후 2시 24분께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백악관에서 첫 번째로 한 일은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뒤집어달라는 자신의 요청을 거절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는 것이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에 머물며 의사당 난입사태 생중계를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의사당에 갇힌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도움을 요청하고자 했지만 연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라면서 "대통령이 TV로 의사당 난입사태의 격렬한 모습을 보느라 분주했기 때문이었다"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서 한 최측근 보좌관은 "(의사당 난입사태 때) 대통령과 접촉하기 어려웠는데 그가 생중계를 봤기 때문이다"라면서 "녹화방송이었다면 잠시 멈추고 전화를 받았을 텐데 생중계였고 대통령은 사태의 전개를 전부 지켜봤다"라고 말했다.
다른 보좌관은 지지자들이 자신 편에서 열심히 싸우는 모습을 트럼프 대통령이 흥미롭고 기분 좋게 지켜봤다고 전했다.
◇ 사태 심각성 늦게 알아…가족·측근만 '발 동동'
백악관 공보라인은 시위대가 의사당에 침입하기 시작한 오후 2시께 이미 대통령 명의의 성명을 내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다만 대통령을 대신해 입장을 낼 권한이 없었기에 마크 메도스 비서실장에게 이 문제를 가져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데도 시간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아차릴 때까지 한참 걸렸다"라면서 "그는 (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를 선거를 도둑질당했다는 생각에 동조해주는 동맹으로 봤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가족과 측근은 사태가 중대함을 곧 알아차렸다.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뉴욕으로 돌아가려던 중 공항에서 한 보좌관의 전화를 받고 오후 2시 17분께 시위대에 진정을 촉구하는 트윗을 올렸다.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폭동임이 명확해지자 아버지를 찾으러 집무실로 달려갔다.
그레이엄 의원은 그런 이방카 선임보좌관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비슷한 시각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대통령과 함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비서에게 전화했다.
콘웨이 전 선임고문이 전화했을 땐 이미 다수의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발언을 촉구하고자 통화 대기자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고 한다.
공화당 의원 몇몇도 대통령 보좌진에 전화해 트럼프 대통령이 폭력행위 중단을 촉구하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 지지자로서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에 반대표를 던질 의사도 있는데 현재는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반복해서 호소했다고 WP는 전했다.
◇ 보좌진 설득 끝 트윗…시위대 추켜올리기는 계속
의사당에서 폭동이 계속되는 동안 백악관 웨스트윙에서는 이방카 선임보좌관과 메도스 비서실장,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이 대통령의 발언을 끌어낼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메도스 비서실장 부하직원 한 명은 그에게 집무실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나라고 촉구하면서 "시위대가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한다.
보좌진은 오후 2시 30분께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의회경찰과 법 집행관들을 지원해달라"라면서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나라 편이다. 평화롭게 있어라"라고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롭게 있어라'라는 문장을 넣길 원하지 않았다고 사안을 잘 아는 관계자는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로부터 한 시간도 안 돼 다시 "의사당에 있는 모두가 평화를 유지하길 요청한다"라고 보다 강한 메시지를 담은 트윗을 올렸다.
시위대에 진정을 촉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상이 나온 것은 오후 4시께다.
영상은 3개의 버전으로 촬영됐고 보좌진은 제일 무난한 버전을 골랐다.
그런데도 영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특별하다"라고 추어올렸다.
오후 6시께 워싱턴DC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선언되고 이후 해가 저물자 비밀경호국(SS)은 필수인원을 제외한 백악관 직원들에게 퇴근을 지시했다.
같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사랑과 평화를 가지고 귀가하라, 이날을 영원히 기억하라"라는 트윗을 올렸다.
이로부터 10여 분 뒤 의사당 주변에 차단 벽 설치가 완료됐고 두 시간 뒤인 오후 8시께 당국은 의사당 안전이 확보됐다고 선언했다.
6시간에 걸친 난동이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 부통령이 대통령 '대행'…부통령 안전 끝내 안 물어봐
대통령이 사라진 6시간 대응을 지휘한 이는 알려진 대로 펜스 부통령이었다.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하던 펜스 부통령은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하자 의사당 내 비밀장소로 피신했다.
그는 의사당 밖으로 피난해야 한다는 SS의 제안에도 의사당 내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부통령은 비밀장소에서 의회·군 지도부와 주 방위군 동원 문제를 논의했다.
의사당을 점거한 시위대가 펜스 부통령 목숨을 위협하는 구호를 외쳤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부통령과 그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결국 부통령 비서실장이 백악관에 전화해 펜스 부통령이 안전하다고 전했다.
WP는 "(의사당 난입사태가 벌어진) 6시간 사이 대통령은 무능했고 기본책무를 수행하는 데도 여러 차례 실패했다"라면서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던 사람이 법을 집행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데 실패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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