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에 110년 서있던 '노예제 옹호' 리 장군 동상 철거

입력 2020-12-22 00:59
미 의회에 110년 서있던 '노예제 옹호' 리 장군 동상 철거

과거 남부연합군 사령관…인종 분리교육 항의 흑인 여성 동상이 대체할 듯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미국에서 과거 노예제를 옹호했던 남부연합군의 사령관 로버트 리(1807∼1870)의 동상이 결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서 철거됐다.

2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의회의사당 건물 안에 1909년부터 110년 넘게 서 있던 리 장군의 동상이 이날 새벽 3시께 철거됐다.

의사당에는 50개 주에서 2명씩 고른 인사의 동상이 서 있는데 리 장군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함께 버지니아주를 대표하는 동상이었다.

이번 철거는 민주당 소속 랠프 노덤 버지니아주 주지사가 주의회 산하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요청한 것이다.

위원회에서는 노예제 존속을 위해 싸웠던 인사가 다양성이 추구되는 현시점에는 주를 대표하는 상징이 될 수 없다고 결정했다.

리 장군의 동상이 서 있던 자리에는 16세인 1951년에 흑인 학생에 대한 처우를 문제 삼으며 시위에 나섰던 바버라 존스의 동상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주의회는 내년 1월 시작되는 회기에 이를 결정할 예정이다.

존스의 사건은 흑인과 백인의 분리교육을 금지한 미 연방대법원의 유명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WP는 전했다. 존스는 1991년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노덤 주지사는 성명을 내고 "젊고 선구자적인 유색 여성이 미 의회의사당에서 버지니아를 대표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서 "방문자들이 미국에 대한 존스의 기여를 알게 되고 존스가 했던 것처럼 그들의 커뮤니티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리 장군 동상 철거를 요구한 제니퍼 웩스턴 하원의원(민주당·버지니아) 등도 성명을 내고 "역사적이자 한참 전에 이뤄졌어야 할 순간"이라면서 "리 장군 동상은 분열과 압제, 인종주의의 유산으로 미국 역사의 어두운 시대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했다.

리 장군의 동상은 버지니아주 주도인 리치먼드의 버지니아 역사문화박물관으로 이동한다.

노덤 주지사는 앞서 리치먼드 시내 중심가에 있는 리 장군 동상 철거도 지시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이 소송을 내면서 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이다.

버지니아에서는 리 장군의 이름을 딴 학교와 도로 이름 변경도 추진하고 있다.

남부연합군을 이끈 장군들에 대한 재평가는 지난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지는 사건으로 인종 차별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본격화했다.

상·하원을 통과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도 남부연합 장군 이름을 딴 미군 기지와 군사시설 명칭 변경 조항이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태세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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