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타이밍구'에 둔감한 스가…우호언론도 비판

입력 2020-12-19 07:07
[특파원 시선] '타이밍구'에 둔감한 스가…우호언론도 비판

코로나19 확산 속 감염 매개체 지목 '고 투' 정책 집착 논란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타이밍'(Timing)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선 거의 국어처럼 쓰는 말이다.

발음은 조금 다르다. 한국 사람은 영어 원래 소리에 근접하게 타이밍이라고 하지만 일본인의 표준 발음은 '타이밍구'다.

타이밍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시기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시의적절'한 순간을 뜻한다.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타이밍구에 둔감한 정치지도자'라는 낙인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에게 찍히고 있다.

스가 총리는 지난 9월 취임 일성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과 그로 인한 경기침체를 '국난'(國難)으로 규정하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겠다고 공약(公約)했다.

그러나 그 공약이 헛된 구호로 전락하면서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내몰리고 있다.



일본 전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스가 내각이 출범한 9월 16일 500명대에서 3개월여 만인 이달 17일 3천200명대로 폭증했다.

겨울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로 사태를 악화시킨 장본인은 시의적절한 정책을 구사하지 못하는 스가 총리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타이밍구 논란에 휩싸인 스가 내각의 대표 정책이 '고 투(Go To) 사업'이다.

고 투 사업은 스가 총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내각의 '안방마님'인 관방장관으로 있던 올 4월 코로나19 제1차 유행에 대응해 마련된 일본 정부의 야심찬 경제재건 대책이었다.

관광·운수·숙박업계(Travel), 음식업계(Eat), 공연업계(Event), 상점가 등 크게 4개의 영역에서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의 일정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수요를 진작하는 것이다.

특히 고 투 트래블은 여행 경비의 35%를 1박의 경우 2만엔 한도에서 세금으로 지원하고, 여기에 15%에 상당의 지역 이용 상품권까지 얹어주는 구조다.

이 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수수료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코로나19로 연간 3천만 명 넘게 찾아오던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상황에서 내국인 관광 수요를 자극해 지역경제를 살릴 효과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시행 후에 실제로 그런 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다만 1차 사업 기준으로만 1조6천794억엔(약 18조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의 전제는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를 억제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지금까지 검증된 것은 사람 간 접촉을 막는 사회적 거리두기이므로 고 투 사업은 코로나19 방역과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채 지난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작된 고 투 사업은 방역 대책과 경제 살리기의 양립을 강조하는 스가 총리가 취임한 후인 10월부터 본궤도에 올랐다.

한번 탄력이 붙은 이 사업은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속에서 의료계를 중심으로 잠정적으로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경제활동을 억제하는 긴급사태가 선포됐던 기간과 겹치는 올 2분기(4~6월)에 일본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와 비교해 7.9% 감소하는 충격을 경험한 스가 총리가 고 투 사업이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이라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사업 강행 의지를 꺾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자키 하루오 도쿄도(都)의사회장은 지난달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고 투 트래블에 도쿄가 포함되고 2주 후부터 감염자가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면서 일시 중단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의료계에선 고 투 사업이 코로나19를 억제하기 위해 '브레이크'(방역 대책 강화)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가속기'(경기 살리기)를 밟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도 스가 총리는 흔들리지 않았고, 일본 곳곳에선 확진자 급증으로 인한 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급기야 일본병원회는 이달 11일 방역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고투 사업의 즉각적인 중단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2일 일본의 하루 신규 확진자가 처음으로 3천 명을 돌파했고, 그다음 날 발표된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코로나19 방역 실패 영향으로 스가 내각 지지율이 한 달 새 무려 17%포인트나 급락해 최저 수준인 40%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고 나서 하루 만에 스가 총리는 마지못해 고 투 사업의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잠정 중단 일정을 오는 28일부터 내달 11일까지로 늦춰 잡는 등 즉각적인 조치를 피하는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자 현 정권에 우호적인 성향인 산케이신문조차도 사설을 통해 '방역 타이밍구'를 계속 놓치는 스가 총리의 뒷북 대응과 현실 인식의 부족함을 질타하고 나섰다.

산케이는 "스가 총리가 '언제부터인가 고 투가 악(惡)이 돼 버렸다. 이동만으로는 감염시키지 않는다는 제언도 있다'고 말했다"면서 "그렇다면 이전의 외출 자제 요청은 쓸데없는 것이 되는 셈"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가 1차로 유행할 때는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외출은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인적 왕래를 80% 줄여야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현지의 한 소식통은 산케이신문에서 스가 총리를 비판하는 내용이 최근 들어 자주 보인다며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에 맞춰 지지율이 계속 떨어질 가능성이 큰 스가 총리의 장래에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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