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그림 속 남아공 흑인 삶과 일상화된 골프
관광부 주관 자선 골프대회서 청년 아티스트 경매작품 선보여
키즈 골프 챔피언들과 골프 치는 아들 뒷바라지하는 아버지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록다운(봉쇄령)으로 인해 수개월 간 미술관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11일(현지시간) 남아공 관광부가 주관한 자선골프대회를 취재하면서, 행사의 일환으로 기금 마련을 위해 경매용으로 전시된 미술작품들을 둘러보게 됐다.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의 114년 된 골프클럽 CCJ의 클럽하우스 베란다에서 열린 전시회는 '뉴에이지' 젊은 흑인세대의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주로 미술관에서만 보던 그림과 조각을 푸른 골프장을 배경으로 큐레이터의 친절한 작품 설명을 들으니 귀에 더 새록새록 들어왔다.
음마트하우스(Mmarthouse)의 큐레이터 부시 은톰벨라는 '농촌과 (흑인 밀집지역) 타운십 개발: 단체 아트 전시회'라는 제목의 브로슈어와 함께 여러 청년 작가들의 작품, 사진, 조각을 맛보기로 보여줬다.
작품 속에는 소웨토에서 플라스틱 병을 수집하는 여인의 꿋꿋이 선 모습과 록다운 4단계에서 외롭게 산책하는 남성의 사진이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건설현장 캐빈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표현했다는 그림도 있고, 멋진 스텔렌보스 자연을 배경으로 빈민촌 양철집 지붕이 환하게 '희망'으로 빛나는 모습을 그린 것도 있었다.
남아공에 이주민으로 많이 오는 짐바브웨 출신 작가가 그렸다는 작품 밑에는 지폐 프린트를 배경으로 하단에는 '이주 딜레마'라는 글씨가 씌어 있어 아마도 돈에 찌들어 삶의 터전을 옮긴 그들의 고뇌를 짐작게 했다.
무언가 힘들게 끄는 흑인 남성의 브론즈 조각상은 역동적이면서 분투하는 삶을 그린 듯하다.
비록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 실제 타운십과 농촌 지역 사람들을 직접 하나하나 만나기 힘들어도, 고단하지만 투쟁하는 생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창의적 작품들이었다.
작품 기법은 르네상스 시대와 비슷하게 하면서도 이를 재창조해 식민지, 노예, 인권, 불의를 부각하는 흑인 피규어를 사용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은톰벨라 큐레이터는 "레보강 모타웅이라는 여성 작가의 경우 헤어드레서 출신으로 가발 등 합성 헤어를 주요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해오다가 코로나19 봉쇄령에 재료조차 구할 수 없게 되자 페인팅(그림)으로 전업했다"면서 "흑인 여성의 머리에 대해 '크라운'(왕관)이란 정의와 표현을 통해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그런가 하면 이날 자선골프 대회에는 키즈(꼬마) 골프 챔피언들인 흑인 샘 타이거(9)와 백인 자키(8)가 나란히 참석해 드라이버 샷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발음상 타이거 우즈와 이름이 겹치는 샘은 미국까지 가서 네 번이나 챔피언을 했고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도 라운딩했다고 한다.
골프 신동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서너 살 때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서 그런지 폼이 당차고 스윙이 꼬마답지 않게 매서웠다.
같이 티오프를 한 음마몰로코 쿠바이-은구바네 관광장관은 멀리건까지 써서 두 번째 드라이버 샷을 했지만, 꼬마들의 샷과 달리 공이 데구루루 앞에 굴러가는 것과 함께 익살스러운 포즈로 좌중에 웃음을 안겨줬다.
남아공이 '골프의 천당'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려서부터 골프를 이렇게 익히면 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스티븐 반 질이라는 백인 남성은 22살 아들 손이 대회에 나가서는 1번 드라이버 샷으로 441m, 그냥 데모로 선보이는 자리에서는 475m까지 날리는 세계 최장타자라고 자랑했다.
단 아들은 제대로 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미국프로골프(PGA) 등에서 아직 빛을 많이 못 봤다고 했다. 기업 스폰서를 잘 구해야 호텔, 항공편 등 제반 경기 경비를 감당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2012년 강도 사건으로 다리 등에 총상을 세 번이나 당해 현재 골프를 할 수 없다면서도, 현 흑인 정권하의 남아공에 미래가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아직도 세계에 줄 게 있다"고 덧붙였다.
린든이라는 다른 백인 남자도 11학년(고2) 아들이 오늘 친구 녀석들과 골프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조그만 트로피를 만들어왔다면서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수십 년간 골프를 즐겨왔다면서 "많이 치는 것보다 제대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골프를 오래 즐길 수 있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남아공에선 아직도 CCJ같은 유서 깊은 골프장에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은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지만 흑인들도 상당히 많이 치고 있다.
이날 행사가 그 단면을 보여줬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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