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북 '이란식 해법' 탄력받나…단계별·국제공조·제재(종합)
'외교 핵심' 블링컨·설리번 중책…공히 과거 이란핵합의 방식 언급
"긴급한 위협 先해결 후 포괄적 협상 필요"…제재로 협상 유도
한국 등 동맹 다자협력 강조…대북 압박서 중국 역할론 주문 예상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3일(현지시간) 외교안보팀 인선을 발표한 가운데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이란식 해법'을 추진할지 관심을 모은다.
외교안보의 핵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차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과거 공히 '이란식 방법론'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제시한 해법은 실무협상에서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법, 지속적 외교, 협상을 위한 대북 제재 강화, 주변국과의 공조로 요약된다. 바이든 당선인의 최측근 외교 참모들답게 바이든의 생각과 일치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정상 간 담판을 중시하며 하향식인 '톱다운'을 선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조와는 상당히 다른 방법으로 대북문제를 접근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블링컨 지명자는 미국 11·3 대선을 40일가량 앞둔 시점인 지난 9월 미 CBS방송 대담 프로그램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과거 이란 핵합의 도출을 거론한 뒤 "나는 북한과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란식 해법에 관한 그의 생각은 트럼프-김정은의 첫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전날인 2018년 6월 11일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북한과 핵협상에서 최선의 모델은?'이라고 자문한 뒤 '이란'이라고 썼다.
2015년 7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억제와 국제 사찰을 대가로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으로, 이란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7개국과 유럽연합(EU)이 서명했다. 블링컨은 이 합의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리번 역시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프의 외교 총책으로 활동하던 시점인 2016년 5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이란에 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트럼프 행정부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선(先) 핵폐기, 후(後) 경제보상'을 골자로 주장해 한때 주목받은 리비아식 해법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이란식 해법'이 회자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블링컨과 설리번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부분은 경제 제재와 국제공조다.
블링컨은 CBS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달래기 위해 동맹들과 군사훈련을 유예하고 경제적 압박 페달에서 발을 뗐다고 지적한 뒤 "우리는 그 대가로 무엇을 얻는가.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실질적으로 증가시켰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협상 진전이 없다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대북 제재 등 경제적 압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우리는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진정한 경제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다양한 수입원과 자원 접근 통로를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 역시 "북한을 진지한 협상장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압박을 급격히 강화하는 것"이라며 "협상 이전에 이란에 부과된 국제적 제재가 일정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중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증가시키는 전략에 동참해야 한다"며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지난 9월에는 비영리기관 '월드 어페어스 카운슬'(World Affairs Council) 화상 세미나에서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북한의 전반적인 핵 능력을 억제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국제공조 필요성을 역설했다.
비핵화를 위한 단계별 접근법을 강조하는 것도 공통 분모 중 하나다. 설리번은 지난 9월 장기적으로 북한 비핵화가 목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확산을 감소시키는 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블링컨은 2018년 기고문에서 단계별 접근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를 조건으로 핵프로그램 공개, 국제감시 하에 농축 및 재처리시설 동결, 일부 탄두와 미사일 제거 등을 담은 중간합의를 할 수도 있다고 봤다.
또 이 경우 더욱 포괄적인 합의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면서도, 이것이야말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취한 접근법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광산, 원심분리기 시설, 조립라인, 농축 및 재처리 시설 위치 등 핵공급 체계 전부를 포괄할 감시 시스템 합의도 필요하다면서 역시 이란 핵합의를 차용할 수 있다고 적었다.
블링컨은 CBS방송과 대담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이는 많은 시간과 준비,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나는 어떤 환상도 없다. 북한이 내일 무기 전부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이는 단계별로 진행해야 할 일이고,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외교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내 한반도 전문가들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연합뉴스 질의에 "블링컨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김 위원장에게 굽실거리지 않을 것이고, 사진찍기용이 아닌 실제 결과물을 기대할 것"이라며 "동맹이 합심하도록 노력하는 등 다자주의적 접근을 취할 것"이라고 봤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실장은 "바이든 안보팀이 중국의 국제적 지원을 강화하고 김 위원장을 한미 연합전선에 관여하도록 하기 위해 신중하고 세밀한 외교적 과정을 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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