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사고원전 오염수 방류, 日주권사항이라 제약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임박하면서 강경화 발언 재부각
타국환경에 피해 주면 안된다는 '제한적 영토주권론' 입각한 국제규범 존재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이율립 인턴기자 = 후쿠시마(福島) 제1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결정 시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주한일본대사관이 지난 20일 한국 언론 대상 설명회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지난달 국정 감사 발언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설명회에서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는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정보 교류를 하고 있다면서 "저희가 알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국정감사에 있어서 일본정부의 대응에 있어서 일정한 평가를 했다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어로 '일정한 평가를 했다'는 표현은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어감을 가지고 있다.
◇강 장관, 10월 말 국감서 오염수 방류 관련 일본 주권 인정하는 발언
강 장관이 국감 때 어떤 발언을 했는지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 26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감 속기록에 따르면 당시 강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으로부터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사안은 원칙적으로 일본 정부의 주권적 결정 사항인가'라는 질의를 받고 "일본 주권적인 영토 내에서 이루어진(이루어지는) 사항"이라고 답했다.
'원칙적으로 일본 정부의 주권적 결정 사항이냐'는 이 의원의 거듭된 질의에 강 장관은 "예"라고 답한 뒤 "원칙적으로 그렇지만 그 결정에 따라서는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강 장관은 한일 간 오염수 방류 관련 소통 내용을 알려달라는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의 질의에 "당당하게 일본에 대해서 정보 요구를 하고 있다"며 "일본도 우리 요청에 대해서는 외무성을 통해서 수시로 일본 측에서 제공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을 해왔다"고 답했다.
맥락상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가 20일 거론한 강 장관 국감 발언은 오염수 해양 방류 관련 일본의 주권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아니라 일본의 정보 제공에 대한 것으로 읽혔다.
그런데도 몇몇 언론은 일본대사관 관계자가 자국의 오염수 방류 관련 주권을 인정한 강 장관 발언을 상기시킨 것처럼 보도했고, 그러면서 강 장관의 '일본 주권 인정' 발언이 재부각됐다.
일본대사관 관계자도 이날 '주권국가인 일본이 오염수 방류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확인하면서, 방류하더라도 국제 규범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타국 환경피해 주지 말라는 '노 함(No Harm)' 원칙·유엔해양법협약 등 규범 존재
그렇다면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는 온전히 일본의 주권적 재량 사항일까?
전통적으로 국가는 자국 영토(영해 포함) 안에서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는 '절대적 영토주권설'에 입각해 과거 오랜 기간 환경 문제도 주권적 재량사항으로 인식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교부 조약국장을 지낸 임한택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저서 '국제법 이론과 실무'에 따르면, 일국의 국경을 넘어 타국 환경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제한적 영토주권론'이 20세기 들어 대두됐다.
미국 대 캐나다 트레일제련소 중재사건(1941년)에서 중재재판소는 '모든 국가는 자국 관할권 내에서의 활동이 국경을 넘어 타국의 환경에 피해를 야기하지 않아야 할 환경피해방지 의무(no harm principle)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각국은 영역 사용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제한적 영토주권론'을 확인했다.
또 1972년 스톡홀름 선언과 1992년 리우 선언은 '자국의 관할이나 통제하에 있는 행동이 타국의 환경이나, 국가관할권의 한계를 넘는 영역에 손상을 야기하지 않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유엔 해양법협약은 자국의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는 지역 밖으로 환경오염이 확산하지 않도록 환경오염을 방지·감소·통제할 의무를 구체화했다.
여기에 더해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국경하천인 우루과이강 펄프공장 사건 판결(2010년)에서 타국이나 국가 관할권 밖의 환경에 대한 국가의 피해방지 의무는 국제환경법의 중요한 원칙으로서 '관습 국제법'임을 확인한 바 있다고 임한택 교수는 소개했다.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 관련 구체적 국제규칙 미비…전문가 "IAEA와 공동대응해야"
이처럼 국제법적 원칙과 '관습법'은 존재하지만, 방사성 오염수의 해상 방류를 특정해서 금지하는 구체적인 국제 규칙이 정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또 국제법정 등에서 제시할 수 있는 과학적 피해 입증이 필요한데, 광대한 바다의 정화 효과를 고려할 때 단기간에 피해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한국 입장에서 넘어야 할 벽이다.
임한택 교수는 "육지에서 바다로 방류된 방사성 물질이 해류를 타고 순환해 타국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은 누구나 짐작 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국에 대한 심각한 위해'를 입증하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 단독으로 일본에 제기할 것이 아니라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같은 국제기구를 참여시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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