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반정부 시위대 상징된 '노란색 오리 모양 고무보트'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물놀이용 노란색 오리 고무보트가 군주제 개혁 등을 요구하는 태국 반정부 시위대의 또 다른 상징으로 떠올랐다.
19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대형 오리 보트가 반정부 시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상·하원이 개헌안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한 지난 17일 의사당 앞 집회에서다.
경찰이 지난달 16일에 이어 지난 8일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쏜 것을 시각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17일 시위에서는 오리 보트가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막는 방패로 사용되기도 했다.
18일 방콕 시내 최중심 상업지구인 랏차쁘라송 네거리에 1만명에 달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운집해 군주제 개혁과 개헌 등을 요구했을 때도 노란색 오리 보트들이 대거 등장했다.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고른 것은 절묘한 선택으로 꼽힌다.
특히 18일에는 시위대가 경찰의 강경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경찰청으로 행진할 때 오리 보트들이 선두에 섰고, "국왕 만세"라는 냉소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일부 시위대는 덤프트럭, 콘크리트 구조물, 철조망 등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진 경찰청을 향해 물총을 쏘거나 페인트를 뿌리는 것으로 경찰이 이전 집회 때 참석자를 가리기 위해 파란색 물감을 타서 물대포를 쏜 것을 조롱했다.
이전까지 태국 반정부 시위의 주요 상징은 '세 손가락 경례'였다.
검지, 중지, 약지를 펼쳐 위로 향하게 하는 것인데, 2012년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에 등장한 것을 빌려왔다.
2014년 태국 군부의 쿠데타 당시 이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표시로 사용되면서 태국 민주 진영의 상징처럼 각인됐다.
네티즌들은 세 손가락이 선거, 민주주의, 자유를 뜻한다고 풀이한다.
반정부 시위대는 오는 25일 방콕 시내 왕실자산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올해 2월 젊은 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던 야당인 퓨처포워드당(FFP)이 강제 해산된 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가 7월 중순 재개됐으며 총리 퇴진과 개헌은 물론 그동안 금기시됐던 군주제 개혁 요구까지 분출하면서 3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국왕이 신성시되는 데다 최장 15년형에 처할 수 있는 왕실 모독죄가 존재하는 태국에서 군주제 개혁 요구는 초유의 일이어서 파문을 불러왔다.
그러나 태국 의회는 18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지지하는 개헌안을 부결시키고 왕실의 권한과 역할을 건드리지 않는 헌법 입안 위원회를 구성하는 2가지 개헌안만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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