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최상위 기부국 코로나 대응에 좌절해도 공개 지적은 꺼려"

입력 2020-11-11 21:31
"WHO, 최상위 기부국 코로나 대응에 좌절해도 공개 지적은 꺼려"

AP 통신, 1∼4월 내부 회의 문건 입수



(제네바=연합뉴스) 임은진 특파원 = 세계보건기구(WHO) 과학자들이 일부 최상위 기부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꺼린 것으로 나타났다.

AP 통신은 지난 1∼4월 WHO의 내부 회의 문건 등을 입수한 결과, 코로나19 1차 물결 당시 WHO가 종종 '큰 손' 국가들을 긴급 호출(call out)하는 것을 피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예를 들어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1월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지만,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정보는 2월 내내 여전히 희박했다고 한다.

마리아 판케르크호버 WHO 코로나19 기술팀장은 WHO가 "무엇이 효과가 있었고 없었는지 말할 충분한 세부 사항"이 결여돼 있었다고 전했다.

2월 발생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의 감염 확산 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은 탑승객 한 명이 이전 정박지였던 홍콩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크루즈의 요코하마항 입항을 불허, 승객과 승무원들을 선내에 격리했고 이후 감염자 수가 급증했다.

이에 대해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내부 회의에서 일본이 선내 감염 조사를 위해 소수의 역학 조사관만 파견했다면서 "조사의 대응 성격으로 볼 때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토마스 그레인 WHO 급성발병 관리팀장도 일본의 보건 당국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라이언 팀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과잉 반응을 조심하자"고 말했다.

이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도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3월 8일 트위터에서 "이탈리아 정부와 국민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해 대담하고 용기 있는 조처를 하고 있다"고 적었지만, 그레인 팀장은 더 많은 관련 정보를 얻으려는 WHO의 노력이 "극적으로 실패했다"고 동료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과묵함'은 WHO에 독자적으로 전염병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물밑 대화와 각국의 협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수에리 문 제네바대학원 글로벌보건센터의 공동 책임자는 "만일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이 회원국들에 매우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좋지 않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WHO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회원국에 '쓴소리'를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통신은 전했다.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병했을 때 당국이 사례를 숨기자 WHO는 중국 지역 사무소를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나이지리아가 2003년 소아마비 백신을 보이콧하자 이를 철회하라고 강하게 촉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피 하먼 영국 퀸메리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는 "국가들이 미심쩍은 일을 할 때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WHO는 세계가 불타고 있을 때 자신의 권위를 약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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