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포스트 대선' 대혼돈…국방 경질 등 조직적 불복 움직임(종합)
축출 시작되나…FBI·CIA 국장에 파우치 소장도 경질 거론
펜스·매코널, 트럼프에 동조…조직적 불복 시나리오 가동 해석
법무장관, '선거부정' 조사 지침에 담당검사 반발·사표
백악관은 바이든팀에 인수인계 거부…남은 72일간 험로 예고
(워싱턴·서울=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이귀원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해 '포스트 대선' 축출의 시작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대선 패배에 불복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사권을 휘두르며 레임덕을 차단하고 불복 정국 속에 행정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72일 남은 내년 1월 20일 바이든 당선인의 공식 취임까지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일각에선 안보 공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축출 신호탄? 에스퍼 국방 전격 경질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에스퍼 장관의 해임을 알리고 크리스토퍼 C. 밀러 대테러센터장이 대행을 맡는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충성심을 중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예스맨'으로 꼽혔지만 지난 6월 초 인종차별 항의시위 사태 때 군 동원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항명하는 등 최근 잇따른 불협화음을 빚으며 일찌감치 해임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번 인사가 관심을 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이후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작업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예상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패색이 짙어지던 지난 6일 보니 글릭 국제개발처(USAID) 부처장을 해임해 배경을 두고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에 이어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경질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두 명의 백악관 관리는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레이 국장과 해스펠 국장이 다음 해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이 국장은 대선 기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들 비리 의혹에 대한 공식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으며 '우편투표=사기투표'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배척, 선거 사기가 확실하지 않다고 의회에서 증언해 분노를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스펠 국장 역시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문건의 기밀 해제에 반대해 눈 밖에 났다는 보도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참여한 당국자들도 경질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제 정상화 기조 속에 전염병이 잡혀간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확산 위험을 계속 경고하고 백신 조기 개발 문제에서도 엇박자를 내면서 대선에 불리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을 비롯해 데비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 로버트 레드필드 질방통제예방센터(CDC) 국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 보고서와 관련해 불편해했던 담당자를 해임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기후 평가'(National Climate Assessment)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후 전문가인 '유에스 글로벌 체인지 리서치 프로그램'(USGCRP)의 책임자 마이클 쿠퍼버그를 에너지부로 원대 복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USGCRP는 5차 보고서 작성을 앞둔 가운데 4차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미칠 악영향을 기술,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퍼버그의 후임으로는 기후변화에 반대 의견을 가진 델라웨어 대학의 기후 전문가이자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국립해양대기청(NOAA) 고위직에 임명된 데이비드 레게이츠가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존 매켄티 백악관 인사국장이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로 끝난 대선 이후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 내 인사들을 해고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 조직적 불복 시나리오 가동했나…인수인계도 차질
에스퍼 장관 경질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을 비롯한 측근 인사들의 범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돼 '큰 그림' 하에 조직적인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대선 결과에 한동안 침묵을 유지해오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을 전격 경질한 바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에 동조하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이날 상원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100% 그의 권한 내에서 부정행위 의혹을 살펴보고 법적 선택권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 "분명히 어떤 주에서도 아직 선거 결과를 인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펜스 부통령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 이건 끝나지 않았다"면서 "모든 합법적인 투표가 집계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는 '선거 부정', '선거 사기' 의혹에 대한 수사도 밀어붙일 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파' 인사로 꼽히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이날 전국의 연방검사들을 상대로 '선거 부정' 주장에 대한 조사 지침을 내렸으며, 이에 반발해 담당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면서 정권 인수인계 작업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 측 정권 인수팀은 이날 연방총무청(GSA)에 대선 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차기 대통령의 인수위가 제대로 활동하도록 지원을 받으려면 GSA가 대선 결과를 공식화해야 하는데 GSA가 이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이 정부 부처와 기관의 고위 관료들에게 바이든의 인수팀에 협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광범위한 축출 전조…충격적인 움직임"
블룸버그통신은 "대통령을 불쾌하게 만든 인사들에 대한 더 광범위한 축출의 전조"라고 말했다.
AP통신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종종 내각을 교체하지만, 패배한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새 대통령 취임식까지 국방장관을 유지해 왔다"며 "대선 패배 직후 충격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에스퍼 장관 해임에 대해 대선 패배 후 힘을 투사하려고 노력하는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행정력을 발휘할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패배 시 레임덕이 불가피하지만, 소송전을 전개하면서 인사권과 행정권을 휘두르는 '마이웨이'로 대선 불복 행보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보도했다.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해 눈엣가시 인사를 잇따라 해임한 뒤에는 무역과 제조업, 중국 관련 등 전 분야에서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행정명령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CNN은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거친 72일의 첫날로 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승복 문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행정부 인사 중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는 듯한 움직임도 나왔다.
짐 브라이든스타인 항공우주국(NASA·나사) 국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인정하며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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