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다섯 장병을 기억하며"…동티모르 에카트강에 추모비

입력 2020-11-05 13:57
"한국인 다섯 장병을 기억하며"…동티모르 에카트강에 추모비

2003년 상록수부대 임무수행 중 급류에…"국가가 끝까지 책임"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2003년 3월 6일, 동티모르의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다 에카트(EKAT) 강에서 숨진 다섯 명의 한국인 장병을 기억하며'



5일 오전 동티모르 오에쿠시주 에카트 강가에 상록수부대 장병 5명을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동티모르는 452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후 1975년 독립했지만, 열흘 만에 인도네시아가 강제 점령했다.

이후 1999년 8월 유엔 감독하에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결정했으나,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유혈사태를 벌였고 당시 김대중 정부가 유엔의 요청을 받아들여 상록수 부대를 파병했다.

1999년 10월부터 2003년 10월 철수할 때까지 4년간 우리 군인 총 3천328명이 동티모르에 파병됐고, 민병조 중령·박진규 중령·백종훈 병장·김정중 병장·최희 병장 등 5명은 임무 수행 중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운전병이었던 김 병장의 시신은 지금껏 찾지 못했다.

오에쿠시주 시내 공원에는 다섯 장병의 얼굴이 새겨진 추모탑이 있다.

주동티모르 한국대사관은 국가보훈처의 예산을 받아 올해 3월 기존 추모탑을 재정비하고, 이날 시내에서 두 시간 떨어진 에카트 강가에 추모비를 제막했다.



이친범 대사는 "오늘 강가에 추모비를 제막함으로써 순직한 장병들을 국가가 잊지 않음을 보여줬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정부 정책을 실현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인근 마을 주민들이 정말 기뻐하면서 '추모비 건립은 우리들의 숙원이었다. 잘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사에 따르면 2003년 사고 당시 상록수부대장이었던 김영덕 예비역 대령은 이 대사가 동티모르에 부임할 때 "에카트 강가에 어떤 표시도 못 해주고 온 게 아쉽다. 어떤 표시라도 할 수 있다면 마음의 짐을 덜 것 같다"고 부탁했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한국인 장병들이 자신들을 도우러 왔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연합뉴스 특파원이 작년 7월 상록수부대 파병 20주년을 맞아 딜리에서 인터뷰한 타우르 마탄 루왁 총리는 "다섯 명의 한국인 순직 장병은 우리의 머릿속에 있고, 이분들은 동티모르의 역사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제막식에서 오에쿠시 주지사는 에카트 강가 추모비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고, 추모탑이 있는 시내에서 이곳까지 3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도록 새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올해 3월 추모탑을 재정비하면서 대사관은 순직 장병 다섯명의 유족으로부터 추모글을 받아 각각 현판으로 새겼다.

고(故) 김정중 병장의 부모는 "오에쿠시와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자랑스러운 내 아들 정중아! 너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그리움을 표현했다.

대사관은 에카트 강가의 추모비 제막을 계기로 오에쿠시주에서 4∼6일 상록수부대 장병 순직 17주년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한국 정부가 동티모르에서 그동안 펼쳐온 공적원조(ODA) 사업을 소개하고, 농촌 지역 개발 세미나, 태권도 시범공연, 한국영화 '맨발의 꿈' 상영, 한-동티모르 가요대전을 마련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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