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이 자본가 마윈에게 보낸 경고장…"선 넘지 말라"

입력 2020-11-04 11:34
중국공산당이 자본가 마윈에게 보낸 경고장…"선 넘지 말라"

도발적 비판후 '인류 최대 규모' 앤트그룹 상장 직전 '규제 몽둥이'로 절차중단

앤트그룹 '캐시카우' 인터넷 소액대출 규제 대폭 강화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 당국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던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 절차를 전격 중단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이를 통해 중국 최고 부호인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에게 당국이 그어 놓은 선을 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음을 낸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자본시장에 후폭풍을 몰고 온 앤트그룹 상장 절차 중단 사태는 지난달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금융서밋에서 한 마윈의 연설에서 발단이 됐다.

마윈은 '위험 방지'를 지상 과제로 앞세워 지나치게 보수적인 감독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당국을 정면 비판해 중국 경제계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마윈은 작심한 듯 "좋은 혁신가들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떨어진 감독을 두려워한다",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제로'(0)로 만들려는 것", "미래의 시합은 혁신의 시합이어야지 감독 당국의 (규제) 기능 경연 시합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같은 도발적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세계적인 은행 건전성 규제 시스템인 '바젤'을 '노인 클럽'이라고 비유하면서 중국 금융 시스템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과감한 주장도 폈다.

전체적으로 기존 금융 기관들과는 성격이 다른 앤트그룹 같은 핀테크 기업에 당국이 완화된 규제를 적용해 더욱더 자유롭게 사업을 펼 수 있게 해 달라는 취지였다.

마윈은 과거에도 당국의 핀테크 산업 규제를 비판한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알리바바 성공 신화로 중국 최고 부호로 등극한 그가 자신이 지배하는 앤트그룹 상장을 통해 세계적 부호로 거듭나기 직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이 더욱 쏠렸다.

더욱이 마윈의 이번 발언은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 이강(易綱) 인민은행장 등 중국의 국가급 지도자와 금융 최고위 당국자들의 면전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대담한 행동으로 평가됐다.

공산당과 국가의 힘이 압도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자본가 마윈이 핵심 당국자들 앞에서 '게임의 룰'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자못 극적이기까지 했다.

중국에서는 마윈의 발언을 둘러싼 뜨거운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혁신가의 쓴소리를 당국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는 포용적 견해도 있었지만 이미 대성공을 거둔 사업가가 더 큰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결국 마윈의 규제 완화 주장에 당국은 '규제 몽둥이'로 화답했다.

1978년 이후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을 걸으며 마윈과 같은 세계적인 부호가 탄생하는 등 천지가 개벽했지만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힘은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국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 부총리가 이끄는 금융안정위원회는 1일 회의를 열고 민간 기업의 금융 혁신을 장려한다면서도 금융 위험 방지를 계속 정책 최우선 순위에 놓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마윈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특히 금융안정위는 이날 회의에서 앤트그룹의 캐시 카우인 소액 대출을 포함한 핀테크 분야 전반으로 전면적 감독을 확대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음날인 2일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은행관리감독위원회, 외환관리국 4개 기관은 공동으로 마윈을 소환해 '예약 면담'(約談)을 진행했다.

이날 중국 금융 당국은 앤트그룹의 주력 사업인 소액 대출 사업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새 규제를 예고했다.

규제안에 따르면 인터넷 대출 업체들은 앞으로 고객 한 명에게 최대 30만 위안 이상의 대출을 해 줄 수 없다. 한도 안이라도 고객 연봉의 3분의 1을 넘어 대출해주면 안 된다.

더욱 치명적 규제는 인터넷 대출 업체들이 은행 감독 당국의 별도 승인 없이는 회사가 등록된 성(省) 밖에서 영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인터넷 대출 업체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국 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해왔다는 점에서 손발을 철저하게 묶는 강력한 규제가 도입된 것이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장 앤트그룹도 이 같은 규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앤트그룹이 전국 소액 인터넷 대출 영업을 위한 면허를 다시 신청해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소액 대출 영업 위축은 앤트그룹의 사업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앤트그룹은 웨이신즈푸(微信支付·위챗페이)와 더불어 중국 전자 결제 산업을 평정한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를 운영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전자결제 서비스는 사용자를 끌어오는 효과가 클 뿐 수익성 자체는 높지 않다.

앤트그룹은 대신 전자결제와 연동된 소액 소비 대출, '리차이'(理財·재테크)로 불리는 금융 투자 상품 판매 등을 통해 많은 이익을 낸다.

앤트그룹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725억3천만 위안(약 12조4천800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38% 늘어났다.

이 중 소액 대출 부문 매출은 285억9천만 위안으로 작년 동기보다 59.5% 급증했다. 상반기 소액 대출 부문 매출은 회사 전체 매출액의 거의 40%를 차지했다.

다만 앤트그룹의 이번 상장 불발은 중국의 '규제 리스크'를 부각해 최근 급속히 발전하던 중국 자본시장의 신뢰성에 상처를 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2년 전 상하이 증시에 나스닥(NASDAQ)과 같은 기술창업주 전문 시장인 과학혁신판(스타마켓)을 조성하는 등 미중 자본시장 디커플링(탈동조화) 시대에 대비해 자국 자본시장 육성에 큰 힘을 쏟아왔다.

중국은 계속 시장화 수준을 높이고 반대로 당국의 규제와 개입을 완화해왔다고 선전해왔는데 앤트그룹의 상장 불발 사태는 여전히 중국이 언제든 휘두를 수 있는 '규제 몽둥이'를 들고 있음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시진핑 주석이 자국 증시를 미국 증시에 필적하게 만들려는 가운데 화요일의 역행은 중국 금융 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