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금지와 전쟁 폴란드 여성들의 처절한 '옷걸이 시위'

입력 2020-10-29 11:24
낙태금지와 전쟁 폴란드 여성들의 처절한 '옷걸이 시위'

헌재의 '기형 태아 등 낙태허용 위헌' 결정에 반발…주요도시서 7일째 시위



(서울=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사실상 모든 상황에서의 낙태를 금지하는 폴란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발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28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BBC 방송에 따르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는 벌써 7일째 수만 명의 여성이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르샤바의 시위대는 낙태 금지 결정을 규탄하는 손팻말, 검은색 우산과 붉은색 페인트 등이 동원됐다. 시위대는 "이건 전쟁"이라고 외쳤다.

시위 참가자들은 붉은색 번개 문양이 그려진 마스크를 썼고, 일부는 철제 옷걸이를 손에 들었다.

철제 옷걸이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위험한 낙태를 의미한다. 낙태가 금지된 국가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의료진의 도움 없이 철제 옷걸이를 이용해 낙태를 시도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에도 우파 정당인 '법과 정의당'(PiS)이 낙태를 전면 불허하는 입법안을 내놓자 여성들이 옷걸이를 흔들며 바르샤바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폴란드 여성들의 시위는 '옷걸이 반란'이라고 불렸고, 결국 낙태 전면 금지 입법안 통과는 무산됐다.

2018년에도 보수 집권 여당이 낙태를 금지하려고 시도했으나, 여성의 반대에 부딪혔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낙태를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국가 중 하나다.

폴란드는 1993년 성폭행과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임신부에게 건강 문제가 있을 때, 태아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마련했다.

작년 한 해 동안 폴란드에서 이뤄진 낙태 수술이 1천110건이었으며, 이중 약 98%가 태아가 장애를 가진 경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헌재 결정으로 폴란드에서는 낙태 허용 범위가 더욱 축소됐다.

폴란드에서 사실상 낙태가 전면 금지됐다며 여성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지난 22일 "건강을 기준으로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생명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기형의 태아에 대해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의 결정이 관보에 게재되면, 폴란드에서는 강간,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그리고 임신부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에만 낙태가 허용된다.

출산 후 생존 가능성이 없는 희박한 아이,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은 태아 등에 대한 낙태는 불가능해진다는 게 시위 참가 여성들의 항변이다.



현지 언론 가제타 비보르차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헌재 결정에 반대했다.

헌재 결정 이후 증폭된 갈등은 폴란드 의회로도 번졌다.

지난 27일 의회에서는 중도·좌파 성향의 의원들은 "수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헌재 결정을 규탄했다. 일부 의원들은 낙태를 허용하라며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에게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보수 성향의 원들은 '붉은 번개 문양'을 나치의 상징 문양과 비교하며 시위대를 비판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선택의 자유는 근본적인 것이지만, 이 선택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며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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