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가장 쓸데없는 것은 록펠러 가문 걱정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축구 팬들 사이에서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은 바이에른 뮌헨에 대한 걱정'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스타플레이어가 부진하고, 부상자들이 속출해도 어차피 분데스리가 우승은 뮌헨이란 뜻이다.
쓸데없는 걱정 카테고리에선 석유산업으로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미국의 록펠러 가문에 대한 것도 뮌헨과 맞먹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1938년 11월23일자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탠더드 오일 창립자인 존 록펠러가 전년도에 사망한 뒤 정부에 신고된 유산은 2천641만 달러. 유족은 이중 약 63%인 1천663만 달러를 상속세로 납부했다.
그러나 록펠러는 미국 최초로 자산규모 10억 달러의 선을 깨뜨리면서 '억만장자'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슈퍼리치였다. 정부에 신고한 유산 수천만 달러는 록펠러가 일군 자산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1917년 미국 의회가 상속세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 빠르게 재산을 후손에게 넘길 방법을 찾아냈다. 당시 증여에 대한 과세 규정이 미비하다는 점을 이용해 스탠더드 오일 지분의 상당 부분을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다.
아들 존 록펠러 주니어도 절세 면에선 선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록펠러 주니어 사망 4년 뒤인 1964년 12월25일자 NYT는 정부에 신고된 그의 자산이 약 1억6천만 달러이고, 상속세로 8% 남짓한 1천300만 달러가 납부됐다고 보도했다.
자산과 비교해 훨씬 적은 상속세를 낸 것은 적법한 절세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록펠러 주니어는 1억6천만 달러 중 절반 이상을 공익법인에 기부하는 식으로 과세 대상 자산 자체를 줄였다.
이 때문에 2017년 록펠러 가문의 3대째인 데이비드 록펠러가 사망했을 당시 남긴 재산은 33억 달러에 달했다. 시간이 지나도 가문의 부는 줄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록펠러 가문이 경영에서 손을 뗀 스탠더드 오일의 영향력도 마찬가지다. 분할과 인수·합병을 통해 엑손 모빌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유지했다.
특정 가문의 경영이나 소유가 기업의 성장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 플라자에는 "소유라는 단어에는 의무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믿는다"는 글이 적힌 석판이 놓여있다.
절세와 함께 자선활동에도 열정적이었던 록펠러 주니어가 남긴 말이다.
참고로 록펠러와 록펠러 주니어가 생전 자선활동에 쓴 재산은 약 10억 달러. 상속세로 낸 액수의 30배 이상을 사회에 환원했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록펠러 가문을 걱정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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