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참수 테러 후폭풍…유럽-이슬람권 '문명충돌' 우려
프랑스-터키 격돌…중동에 프랑스 반감 확산
아시아 방글라까지 마크롱 인형 화형식
EU, 프랑스 두둔 속 이슬람권 내 미묘한 온도차도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프랑스 '교사 참수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프랑스와 터키 대통령 간 설전이 유럽과 이슬람권 국가들 간의 대립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선 노골적인 반(反)프랑스 운동이 벌어지고, 유럽국들은 이에 맞서 프랑스를 옹호하며 문화적인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갈등을 촉발한 건 지난 5일 프랑스에서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화를 수업시간에 사용한 교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었다.
◇ 프랑스-터키 정면충돌…"사상이 문제" vs "유럽 지도자들 파시스트"
마크롱 대통령은 이를 두고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자신들의 법이 공화국의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문제"라고 이슬람교 자체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마크롱은 무슬림과 무슨 문제가 있나. 그는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며 독설을 퍼붓고 프랑스 제품 불매를 촉구했다.
이후 유럽 지도자들을 싸잡아 '파시스트'(과격 국가·국수주의자)로 비하하며 전선을 확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경발언은 이슬람권 전반에 프랑스 비난 기류가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 아랍국가들 반발 확산 속 EU는 프랑스 두둔
아시아의 이슬람권 국가인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선 27일 약 4만 명이 참여해 프랑스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마크롱 대통령의 인형을 불태우고 프랑스제 불매 운동을 촉구했다. 이들은 프랑스 대사 추방과 대사관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아랍국가들이 밀집한 중동에서도 반발이 눈에 띄게 격화하고 있다.
쿠웨이트에선 상점들이 프랑스 제품 판매를 중단했고 카타르에선 수도 도하의 유명 프랑스 식당이 프랑스산 재료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에서도 프랑스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정부 차원에서도 무함마드 풍자만화를 규탄하며 프랑스를 에둘러 비판하는 입장을 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외무부는 "사우디는 예언자이자 평화의 사도인 무함마드를 그린 모욕적인 만화를 규탄하며 이슬람을 테러리즘과 연결하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한다"라고 밝혔다.
요르단 외무부 역시 "표현의 자유를 구실로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캐리커처를 출판하는 일"을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국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설을 비난하며 프랑스를 옹호했다.
유럽연합(EU)의 외교수장 격인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용납할 수 없다"며 "이런 위험한 갈등의 증폭"을 멈추라고 규탄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터키는 긍정적 의제를 제안하지 않고 지중해에서 도발과 일방행동에 나서더니 이제 모욕까지 한다"고 비난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총리실 대변인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며 마크롱 대통령을 두둔했다.
◇ 이슬람권 온도차…터키 날뛰지만 사우디·이란은 상대적 온건
이슬람권이 프랑스를 향해 날을 세우는 분위기이지만 주요 국가의 대응은 미묘하게 온도 차가 난다.
터키는 가장 원색적으로 반발해 이번 충돌을 주도했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경한 이슬람화 정책과 맞닿는다고 할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세속주의 이슬람국가인 터키를 종교로 묶어 자신의 장기 집권의 기반으로 삼고자 한다. 터키는 근현대사에서 혈통, 역사적으로 아랍권과 이란이 양분하는 이슬람권의 변방이었지만 중동에서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키우는 에르도안 정부는 종교적으로도 이슬람의 지도국이 되려 한다.
이번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설도 이슬람권의 강국으로서 입지를 과시하려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슬람 시아파 주도국 이란은 자국 주재 프랑스 대사대리를 초치해 강하게 항의했지만 터키처럼 직격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사우디와 경쟁하는 이란 역시 이슬람권의 대표국을 자임하지만 미국의 최대 압박 정책에 맞서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핵합의 서명국과 등을 완전히 돌리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중동의 친미 동맹의 핵심인 사우디는 국영 통신을 통해 뒤늦게 성명을 내는 수준으로 그쳤으며 내용도 프랑스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이슬람 두 성지의 수호자'로 자칭하는 이슬람의 지도국이라는 종교적 위치를 고려하면 신성모독 문제에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대응한 셈이다.
사우디는 이란의 위협에 맞선다는 이유로 친서방 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데다 원자력, 전투기 수입 등 굵직한 분야의 협약을 프랑스와 진행 중이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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