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낮춰야" 스가 압박에 일본 이통사 '꼼수인하' 조짐
'주파수 할당방식 변경' 카드까지…'특정업체에 유리한 정책' 논란도
데이터 사용량 적은데 대용량요금제만 인하…"수요와 동떨어졌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이 간판 정책 중 하나인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달성하려 전파 정책 수정까지 거론하며 연일 이동통신사를 압박하고 있다.
주요 이동통신사는 기존보다 가격을 낮춘 새로운 요금제 출시를 검토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가계 부담 감소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일본 총무성은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유도할 액션 플랜(행동계획)을 전날 발표했다.
여기에는 대형 이동통신사가 저가 스마트폰 출시를 추진하는 업자에게 회선을 임대할 때 가격을 대폭 낮추도록 하는 구상이나 소비자가 휴대전화 번호를 그대로 두고 이동통신사를 바꿀 때 내야 하는 3천엔(약 3만2천원)의 수수료를 무료로 전환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총무성은 온라인 신청으로 심(SIM) 카드를 교체할 수 있게 하는 이(e)심을 보급한다는 계획과 소비자가 알기 쉽도록 요금이나 가격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용 사이트를 개설하는 구상을 함께 밝혔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동통신사에 전파를 할당하는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점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일본 총무상은 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정한 시장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지 매년 검증하겠다. 필요에 따라 대응을 재검토하고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 이것은 그동안 없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총무성이 발표한 액션플랜에는 "주파수의 유효 이용 촉진"을 위한 계획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는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등 3대 이동통신사가 휴대전화에 사용하는 이른바 '플래티넘(백금) 주파수 대역' 할당 방식의 변경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마이니치는 풀이했다.
스가 총리가 '전파는 공공재'라는 인식을 강조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다케타 총무상이 "플래티넘 주파수 대역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변에 의욕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현재는 기존 사업자가 철수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사업자에게 플래티넘 주파수 대역을 할당할 수 없게 돼 있으나 이런 구조를 바꾸면 시장의 판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2014년에 기존 이동통신사의 회선을 빌려서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한 뒤 올해 초부터 자체 통신망 사업을 시작한 라쿠텐(樂天)모바일이 플래티넘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통신 품질이 향상해 주요 3사와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주요 이동통신사의 한 간부는 "라쿠텐을 후원하려고 하는 정부의 의도를 느꼈다. (중략) 요금인하(요구)에 확실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전파 할당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압력도 있다"고 반응하는 등 논란으로 번질 조짐도 있다.
스가 정권의 전방위 압박에 주요 이동통신사는 기존보다 데이터 통신 제공량과 금액을 낮춘 새로운 요금제 출시를 잇달아 검토 중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월 데이터 20GB 정도인 5천엔(약 5만4천원) 미만의 요금제를, KDDI는 3천980엔(약 4만3천원)에 20GB를 쓸 수 있는 요금제를 각각 검토 중이다.
올해 3월 말 기준 NTT도코모의 지분을 66% 정도 보유한 NTT는 NTT도코모의 지분을 전부 공개 매수해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후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을 것이 관측된다.
하지만 밀어붙이기로 나온 새 요금제가 서민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새 요금제는 기존보다 싸기는 하지만 데이터 용량이 대폭 줄기 때문에 데이터를 많이 쓰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돈을 조금 더 내고 초대용량 요금제를 택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당 요금으로 계산하면 기존의 초대용량 요금제가 오히려 싸게 먹힐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올해 2월 기준 스마트폰 계약자의 월평균 데이터 이용량은 약 7GB이고 이용자 절반가량은 3GB밖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민간 연구소 MM소켄(日本總硏)의 분석을 소개하고서 새로운 요금제가 수요와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전했다.
주요 이동통신사는 정치적 압력에 못 이겨 형식적으로 요금 인하 요구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나 소비자의 행태 등을 분석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꼼수 인하'로 소나기를 피하려 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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