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만든건 중국 또는 미국' 음모론 신봉자 의외로 많다
가디언·유고브-케임브리지 글로벌리즘 프로젝트 공동조사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세상이 놀랄만한 큰 재난이나 사건이 닥쳤을 때 그것이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닌 배후 세력의 조작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지만 설득력이 있는 것도 같은 이런 믿음을 우리는 '음모론'(陰謀論) 이라고 부른다.
2020년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재앙으로 여겨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해서도 무수히 많은 음모론이 제기됐다.
인류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가 중국 또는 미국에 의해 만들어져 유포됐다거나,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집계하는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가 과장이라는 믿음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코로나19에 관한 음모론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영국 일간 가디언과 유고브-케임브리지 글로벌리즘 프로젝트의 공동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전 세계 25개국 2만6천 명을 대상으로 지난 7∼8월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의 응답자는 특정 국가에 의한 바이러스 제조 및 유포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 과장 등 음모론을 믿는다고 답했다고 가디언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선 이번 조사에서 코로나19가 중국 또는 미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유포됐다'고 믿는다는 응답 비율이 상당 수준이었다.
신종 바이러스 제조 및 유포자로 중국을 지목한 음모론 신봉 비율은 나이지리아가 50% 이상으로 가장 높았고, 남아공, 폴란드, 터키가 40% 이상으로 뒤를 이었다.
미국, 브라질, 스페인의 경우 이 음모론 신봉 비율이 35% 이상,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의 비율도 20∼25% 선이었다.
바이러스 제조 유포 책임자로 죽국이 아닌 미국을 지목한 음모론에 대해서는 터키 응답자의 신봉비율이 37%로 가장 높았고,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도 20%에 달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응답자의 17%가 자국 정부를 겨냥한 이 음모론을 신뢰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가 과장이라는 음모론이 절대적으로 진실이거나 진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국가별로 보면 나이지리아가 59%로 가장 높았고, 그리스가 46%로 그 뒤를 이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코로나19 통계 조작설'을 믿는 셈이다.
그리스, 남아공, 폴란드, 멕시코에서도 40% 이상이 이 음모론에 동조했다. 미국(38%), 헝가리(36%), 이탈리아(30%), 독일(28%)에서도 통계 조작설 신봉자가 30% 안팎에 달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지만, 반대로 과학 부정론자나 음모론자들이 퍼뜨리는 가짜뉴스 유행 추세도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국 브리스틀대 인지 심리학자인 스테판 레반도프스키는 "바이러스 대유행이나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무서운 사건은 '통제 불능' 상황에 대한 일부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이것이 음모론 확산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음모론은) 심리적인 안정감, 즉 자신은 무작위 피해 대상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며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이런 신념은 공식 조언을 무시하게 하거나 파괴적인 행동 또는 폭력을 저지르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정부의 무능이 음모론 확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프랑스에서는 4명 가운데 1명, 영국과 스페인에서는 4명 가운데 1명꼴로 코로나19 사망자 통계 과장설을 신뢰한다는 답이 나왔다.
반면 코로나19 대응이 돋보였던 호주나 초기부터 '집단면역' 실험으로 방향을 잡았던 스웨덴 등에서는 이런 음모론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이번 조사에서는 5세대(5G) 이동통신망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황당한 음모론 신봉자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5G 네트워크가 코로나19 감염증을 유발하거나 심화한다는 음모론을 신뢰한다는 응답 비율은 터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나이지리아, 남아공 등에서 20%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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