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국민투표서 새 헌법 제정 가결…'피노체트 헌법' 버린다
개표 후반 78%가 새 헌법 제정 찬성…내년 4월 제헌의회 선출
1980년 군부독재시절 만든 현행 헌법은 역사 속으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칠레 국민이 군부독재 시설 만들어진 '피노체트 헌법'을 폐기하고 새 헌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25일(현지시간) 치러진 국민투표 개표가 87%가량 진행된 현재 새 헌법 제정에 찬성하는 응답률이 78.2%에 달하고 있다. 반대 표는 21.8%를 기록 중이다.
아직 개표가 완료되진 않았지만 칠레 전역에서 가결에 필요한 과반 달성이 확실시돼 칠레 언론들도 일찌감치 "국민이 새 헌법 제정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
새 헌법 초안 작성 주체를 묻는 문항의 경우 개표가 70%가량 진행됐는데, 내년 4월 선출될 시민 대표로만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작성해야 한다는 응답이 79%가량이다. 기존 의원들과 시민 대표들이 함께 초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응답은 20%에 그치고 있다.
이로써 칠레는 40년 만에 새 헌법 제정에 나서게 된다.
현행 헌법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1973∼1990년)인 198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으나 근간은 유지됐다.
독재 시절의 유물인 헌법을 바꾸자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으나 실제로 새 헌법 제정이 결정된 데에는 지난해 10월 격화한 시위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당시 시위는 교육, 의료, 임금, 연금 등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제도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확대됐고, 시위대는 불평등의 뿌리에 현행 헌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현행 헌법이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이로 인한 불평등 심화에 책임이 있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며 30명 넘는 사상자가 나오고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자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 헌법 제정 국민투표를 치르기로 했다.
4월로 예정됐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한 차례 연기돼 치러진 이번 투표는 변화를 향한 열망을 반영하듯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이날 개표 초반 결과가 발표된 후 "시민과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이번 국민투표는 끝이 아니라 새 헌법을 위해 함께 달려야할 여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헌법이 통합과 안정, 미래의 중요한 틀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투표 종료 무렵부터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을 비롯한 칠레 곳곳에선 시민들이 밖으로 나와 개표를 함께 지켜보며 환호했다.
일단 새 헌법 제정과 제헌 주체가 결정됐으나 실제로 새 헌법이 만들어지기까진 남은 단계가 많다.
우선 헌법 초안을 쓸 시민 대표들이 내년 4월 선출된다. 155명의 제헌의회는 남녀 동수로, 원주민도 포함해 구성될 예정이다.
이들이 초안을 만들면 오는 2022년 이 헌법안을 두고 다시 한번 국민투표가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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