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에 3천만원 송금…터키 현지인 신고로 '휴~'(종합)
'내전국가 근무 미군 여성'에 한국서 2만6천 달러 송금
대포통장 이용당한 터키 호텔 주인, 주이스탄불 총영사관에 신고
터키 경찰 협조로 범인 체포…피해액 돌려받아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지난 14일(현지시간) 주이스탄불 한국총영사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스탄불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터키인 A씨가 자신의 계좌로 한국에서 거액이 송금됐다고 했다.
이스탄불 총영사관의 사건·사고 담당 직원은 수년 전부터 기승을 부리는 '로맨스 스캠'(SNS·이메일 등 온라인으로 접근해 호감을 얻은 뒤 금전을 요구하는 사기 수법) 사건임을 직감하고 A씨에게 경찰에 신고할 것을 당부하고 송금자 신원 파악에 나섰다.
지난해와 올해 이스탄불 총영사관에 접수된 SNS 피싱 사례는 모두 40건이 넘고 피해액도 수십억원에 달할 정도로 사건이 잦은 편이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A씨에게 돈을 보낸 사람은 한국인 B씨였다.
이스탄불 총영사관 직원은 한국의 송금 은행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B씨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자, B씨 주소지의 아파트 경비실로 전화해 다행히 B씨와 통화하는 데 성공했다.
B씨는 SNS를 통해 자칭 내전 국가에서 근무 중인 미군 여성이라는 C씨를 알게 됐으며, 이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다고 했다.
어느 날 C씨는 자신이 모은 100만 달러를 송금하려 하는 데 통관 비용이 필요하다며 B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B씨는 그 말을 믿고 2만6천 달러(약 3천만원)를 송금했다.
그러나 B씨가 보낸 돈은 미군 여성 C씨가 아닌 터키의 호텔 주인 A씨의 계좌에 입금됐다. 전형적인 대포통장을 이용한 '로맨스 스캠' 수법이었다.
총영사관 직원은 즉시 B씨에게 외화 송금을 철회하고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신고할 것을 안내했다.
다음날 호텔 주인 A씨와 총영사관 담당 직원은 관할 경찰서에 출두했다. A씨는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고 신고했고, 총영사관 직원은 B씨의 피해 사실과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인 남성 2명이 용의자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자신을 무역상이라고 소개한 용의자들은 한동안 숙박비를 제때 지불했지만, 최근 들어 숙박비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A씨가 숙박비 납부를 요구하자 A씨의 계좌로 사업 자금이 들어올 텐데 숙박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을 자신들에게 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B씨가 보낸 2만6천 달러가 A씨의 계좌에 입금됐다.
A씨는 이들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한국에서 거액이 송금된 것을 수상하게 생각해 이스탄불 총영사관에 신고했다고 했다.
A씨의 신고를 접수한 이스탄불 경찰은 15일 저녁 A씨의 호텔로 출동해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남성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을 미군 여성 C씨로 알고 거액을 송금한 B씨는 돈을 돌려받았으며, 범인들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이스탄불 총영사관에 접수된 SNS 피싱 사례는 2019년 18건, 2020년 24건 등 총 42건이며, 누적 피해액은 수십 억원에 달한다.
범인들은 대부분 채팅앱이나 SNS, 이메일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한 후 상대방이 반응하면 가상 인물의 사진을 보내거나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은 후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총영사관에 신고된 사례 중에는 채팅앱으로 만난 한국인과 결혼하겠다고 속여 비자 발급 비용·항공료 등을 요구하거나, 거액을 상속받게 해주겠다며 각종 비용을 뜯어낸 경우 등이 있었다.
이번 사건처럼 범인을 체포하고 피해 금액까지 돌려받은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범인이 가명과 대포통장을 사용하며, 터키 내 불법 체류 외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스탄불 총영사관은 "이번 사건은 공관에 접수된 SNS 피싱 사건 중 용의자가 검거된 첫 사례"라며 "직접 신고를 해준 터키인 A씨, 긴밀히 공조한 터키 경찰 당국의 노력으로 우리 국민의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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