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볼리비아 주유소 앞에 차들이 늘어선 까닭은
작년 대선 후 봉쇄 시위로 연료난…혼란 재연 우려에 생필품 비축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주유소 앞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이 길게 줄을 섰다.
연료난이 극심한 베네수엘라나 쿠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주유 행렬이 볼리비아에도 나타난 것은 오는 18일(현지시간) 예정된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16일 로이터·EFE통신 등은 대선 후 사회 혼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볼리비아 사람들이 연료 등 생필품 비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수도 라파스의 부촌인 소나수르 지역에선 이날 주유를 위해 운전자들이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사재기에 나선 볼리비아인들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다.
볼리비아에선 1년 전 대선 직후 극심한 혼란이 한동안 지속돼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대선에선 4선 연임에 도전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 짓는 결과가 나왔지만, 석연찮은 개표 과정을 두고 반대파들의 불복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물러난 후엔 모랄레스 지지자들이 대신 거리로 쏟아져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달가량 지속된 격렬한 시위 속에 30여 명이 숨지고 800명 이상이 다쳤다.
도로 봉쇄도 동반되면서 물품 수송에도 차질이 생겨 연료와 생필품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주유소들은 문을 닫았고, 개인 차량은 물론 택시와 버스까지 기름이 없어 운행하지 못했다. 슈퍼마켓엔 한동안 닭과 달걀 등도 자취를 감췄다.
당시 대선 결과가 무효가 된 뒤 1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도 지난해 못지않은 긴장감 속에서 치러진다.
아르헨티나에 망명 중인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이끄는 좌파 정당 사회주의운동(MAS)의 후보 루이스 아르세가 1차 투표에서 당선될지, 아니면 추격하는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이 격차를 좁혀 승부를 결선 투표로 끌고 갈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대선과 시위 사태를 겪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도농·인종·계층 간의 갈등이 첨예해진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라 대선 과정이나 결과에서 불씨가 발견되면 작년의 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지난 며칠간 평소보다 70% 많은 고기를 팔았다는 정육점 주인 프레디 치푸나비는 로이터에 "사람들이 지난해 너무 고생했다. 올해는 그때 같진 않겠지만 미리미리 준비들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날 볼리비아 대선과 관련한 성명을 내고 "누구도 작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모두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폭력적인 행위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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