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코로나로 얼어붙은 러시아 문화계…한류 열풍은 여전

입력 2020-10-16 07:07
[특파원 시선] 코로나로 얼어붙은 러시아 문화계…한류 열풍은 여전

온라인 한류 페스티벌 'K-페스트 2020' 성황…틱톡 K-팝 조회수 110만

한국어 배우기 붐, 초중고 제2외국어로도 채택…K-팝 동호회만 1천500개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확산세가 러시아서도 만만찮다.

이달 9일 하루 신규 확진자 수(1만2천126명)가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 5월 11일 신규 확진자 수(1만1천656명)를 추월한 데 이어 연일 최대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수도 모스크바에서만 하루 3천~4천명대의 감염자가 쏟아지면서 인구가 비슷한 서울의 누적 확진자 수에 근접할 정도다.

러시아 전체 누적 확진자는 130만명을 넘어 미국, 인도, 브라질에 이어 여전히 세계 4위 규모다.

심각한 전염병 재확산세에 콘서트와 연극 공연, 영화 상영 등이 대부분 중단되거나 제한되면서 문화 활동이 마비를 우려할 만큼 위축됐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러시아 내 한류 열기는 크게 식지 않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한류를 이끄는 K-팝과 한국 영화 및 드라마·한식 등에 대한 현지인들의 높은 관심과 한국어 학습 붐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예가 올해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주러 한국문화원과 한국관광공사 모스크바지사가 공동으로 마련한 'K-페스트 2020'(K-FEST 2020) 온라인 페스티벌이다.

지난달 말 시작해 2개월 동안 계속되는 페스티벌에는 관광(K-Travel), 영화(K-Cinema), 공연·전시(K-Performance & Exhibition), 음식(K-Food), 스포츠(K-Sports), 한국어(K-Language), 뷰티(K-Beauty), 음악(K-POP) 등 8개 분야에 걸친 한류 콘텐츠가 모두 망라돼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한국문화와 관광 콘텐츠 등을 즐기고 관련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된 페스티벌 공식사이트(www.k-fest2020.ru) 조회수는 행사 시작 보름여 만에 37만회를 넘어섰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다양한 한류 콘텐츠를 즐기려 사이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 행사와 연계해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 현지 인플루언서(영향력이 큰 유명 연예·스포츠계 인사나 블로거)들이 춘 K-팝 댄싱 영상을 짧게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이를 따라 춰 영상을 올리고 공유하는 '댄스 챌린지' 행사 조회수는 벌써 110만회를 기록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현지인들의 열기도 뜨겁다.

모스크바 한국문화원과 원광학교 '세종학당'에 개설된 한국어 강좌에 등록한 수강생 수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9월~12월 진행되는 가을학기 한국문화원 강좌에는 1천700명이, 원광학교 강좌에는 900명이 등록해 초·중·고급 과정의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

한국문화원 강좌의 경우 코로나19 전파 전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되던 2018년(약 1천300명)이나 2019년(약 1천600명)보다 오히려 학생 수가 더 늘었다.

위명재 한국문화원장은 "한국어 강좌 온라인 신청은 개설 5분여만에 마감될 정도로 수강생들의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한국문화원이 지난 2017년부터 개설한 온라인 동영상 한국어 강좌는 지금까지 누적 조회수가 400만 회에 달했고, 올해에만 120만 회를 기록했다.

이 같은 열기를 반영하듯 러시아 교육부는 지난달 한국어를 초·중·고 학교(쉬콜라) 제2외국어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했다.

교과서 개발과 검·인정 심사 등이 끝나는 대로 현지 학교 교실에서 한국어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당초 러시아 내 한류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부터 시작됐다.

2000년대 초·중반 이창동·김기덕·박찬욱 감독 등의 작품이 소개되면서 한국 영화 붐이 일었고, 가을동화(2000년)·궁(2006년)·꽃보다 남자(2009년) 등의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뒤이어 밀려온 K-팝은 한류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현지 젊은이들은 동년배 한국 K-팝 스타들의 화려하고 세련된 춤과 노래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K-팝 열기는 러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등 옛 소련권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한국문화원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옛 소련권에는 1천500개 이상의 K-팝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고, 전체 회원 수는 3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이돌 그룹 BTS, 블랙핑크, EXO, NCT 등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들보다 팬덤이 적은 K-팝 그룹이 모스크바에 올 때도 공연장은 항상 만원이다. 정부 고위 관료나 부호 자녀들까지 부모들을 졸라 콘서트장을 찾는다.

모스크바에서 K-팝 공연을 주관하고 있는 공연기획 프로듀서 정진용씨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러시아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K-팝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K-팝 스타들의 소통 능력에 러시아 팬들도 열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상위 그룹이 아니더라도 한 번에 7~8천명을 끌어모을 수 있는 유료 공연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소개했다.

K-팝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자연스럽게 노래 가사 이해에 필요한 한국어와 전통문화·한식 등을 포함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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