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스마트] '선의'는 지옥행 도로의 포장재일 뿐
공정위 제재 억울한 네이버, '소상공인 지원 취지' 항변하지만…
(서울=연합뉴스) 홍지인 기자 = 네이버는 요즘 너무 억울하다.
이전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썩 달갑지 않은 일로 몇 번 엮인 적이 있었지만 가능한 '좋게좋게' 해결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정위의 쇼핑·동영상 검색 관련 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즉각 "악의적 지적"이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불복'과 '법적 대응' 방침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도 억울함이 감지된다.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선 네이버 직원으로 인증된 회원들이 올린 "오픈마켓 사업자인 네이버 쇼핑이 자기 상품을 우선 노출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내용의 여러 글이 눈에 띈다.
네이버의 대관 담당 직원들이 '공정위에 행정소송을 걸면 우리가 이긴다'라고 출입 기관에 말하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정위가 국감을 앞두고 무리하게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게 아니냐는 수군거림도 있다.
이처럼 전에 없이 진한 억울함의 바탕엔 공정위로부터 '검색 알고리즘 조작'으로 지적된 일련의 행위가 사실은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확신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쇼핑을 이끄는 이윤숙 포레스트 CIC 대표는 이달 8일 국정감사장에서 "플랫폼 사업자로서 소상공인에게 좋은 장터를 마련해주고자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알고리즘을 바꾼 것도 이용자를 위해 검색 결과의 다양성을 높이려는 차원이란 게 네이버 측의 논리다. 결과적으로 네이버 쇼핑 부문이 급성장하고 동영상 조회 수가 많이 늘어난 것은 일종의 부수적인 효과로 치는 셈이다.
네이버가 진짜 순수하게 좋은 뜻으로 그랬는지, 아니면 소상공인 지원을 빙자해 부당한 이익을 누리려 했는지는 나중에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네이버란 거대 플랫폼에 요구하는 공정성과 투명성의 수준이 단순히 일개 사기업의 '선의'에 기댈 수 없다는 점은 간명하다.
쇼핑보다 우리 사회에 훨씬 더 영향력을 끼치는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를 보면,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공정하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기사 배열·편집 원리를 물으니 '영업 비밀'이라고 함구한다면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란 유럽 속담은 여러 뜻으로 해석이 된다.
의미야 어쨌든 이 속담이 유래한 곳에서는 '선의로 그랬다'는 항변이 잘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2017년 구글은 자사 쇼핑 서비스를 검색 결과 최상단에 노출하고 경쟁 쇼핑몰 노출 순위를 하향 조정하는 꼼수를 썼다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로부터 과징금 3조3천억원이라는 진정한 '철퇴'를 맞았다.
ljungber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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