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전이암 생기면 면역계는 암세포를 찾지 못한다

입력 2020-10-07 14:15
간에 전이암 생기면 면역계는 암세포를 찾지 못한다

면역계 탐지 시스템 재편…조절 T세포 등 면역세포 유전자 발현 제어

미 UCSF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 면역학'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면역 관문 억제제(checkpoint inhibitors)는 상당히 획기적인 암 치료법이지만 아직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컨대 PD-1 단백질 등을 표적으로 하는 관문 억제제는 모든 암 환자에게 듣지 않고 일부 환자만 제한적으로 효과를 본다.

특히 원발 암이 간으로 전이된 경우엔 초기 효과가 있던 환자도 얼마 못 가 저항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암세포가 약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원발 암이 간에서 멀리 떨어진 부위에 있어도 이런 저항성이 생기기는 마찬가지다.

간에 전이된 암이 어떤 작용을 해서 원발 암에 면역치료 저항이 생기는지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연구진이 밝혀냈다.

이 발견은 향후 간 전이암 환자의 면역치료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거로 기대된다.

이 대학의 제프리 블루스톤 미생물학 면역학 부교수 연구팀은 최근 저널 '사이언스 면역학(Science Immunology)'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7일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암세포는 종종 인체 면역계의 탐지를 회피하는 능력을 보인다.

이런 암세포가 대량 생성하는 PD-L1 단백질이 T세포 표면의 PD-1 '해제 스위치(off-switches)'와 결합하면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 반응이 약해진다.

관문 억제제는 '조절 T세포(Tregs)'에 작용해 PD-L1과 PD-1의 결합을 차단하고 암세포의 면역 회피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이 독특한 방법으로 T세포의 암세포 공격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은 소화계 등에 있는 다른 기관에서 들어오는 혈액을 거르면서 어떤 단백질이 외부 침입자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가려내 면역계에 신호를 보냈다.

간은 이런 작용을 하면서 멀리 떨어진 부위에 나타나는 면역세포 가운데 어떤 것이 보호할 대상인지를 구분했다.

연구팀은 생쥐 몸의 두 부위, 즉 피하(皮下)와 간 또는 피하와 폐에 각각 암세포를 이식하고 면역 반응을 관찰했다.

간에 뿌리를 내린 암세포는 간의 이런 기능을 이용해 면역계의 병원체 탐지 기제를 재편(retrain)하고, 이를 통해 멀리 떨어진 부위에 생긴 암세포에 대해 면역 반응을 조절했다.

또한 간의 종양은 '조절 T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제어함으로써 다른 면역세포의 유전자 발현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PD-1 억제 치료를 받은 생쥐의 생존율은 간에 2차 암이 생겼을 때 크게 떨어졌고,이때 생쥐의 면역계는 간의 종양은 물론 피하의 종양도 탐지하지 못했다.

단일 세포 분석(single-cell analyses) 결과, 간에 종양이 생긴 생쥐에는 원발 암과 연관된 T세포가 전처럼 높게 발현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T세포 관문 억제제 'CTLA-4'와 조절 T세포 수를 줄여 CTLA-4를 억제하는 'anti-CTLA-4' 화합물을 함께 투여해 PD-1 억제 치료 효과가 복원되는 걸 확인했다.

연구팀의 일원인 제임스 리 박사는 "이런 유형의 정밀한 면역 치료는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다"라면서 "간에 전이암이 생긴 환자에게 처음부터 조절 T세포를 줄이는 면역치료를 병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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