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 시행 후 딜레마에 빠진 홍콩 민주진영
입법회 선거 1년 연기되며 임기 연장되자 '잔류'·'사퇴' 의견 엇갈려
여론조사 결과 따라 대다수 잔류 결정했으나 내분 골 깊어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중국의 홍콩에 대한 장악력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홍콩 범민주 진영이 투쟁 방식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 6월 30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으로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홍콩 입법회 내 범민주 의원들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향후 야권의 세 결집에 난항이 예상된다.
◇ 입법회 선거 연기에 임기 연장되자 내분
홍콩 의회인 입법회 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현 제6대 입법회 의원의 임기는 원칙대로라면 30일 만료된다.
그러나 홍콩 정부가 지난 7월 3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9월 6일 치러질 예정이었던 입법회 선거를 1년 연기하면서 제6대 의원들의 임기도 연장됐다.
중국이 홍콩 입법회 의원 선거 1년 연기에 따른 홍콩의 입법 공백을 막기 위해 현역 의원들의 임기를 제7대 입법회 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1년 이상 연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선거 연기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홍콩보안법 시행 속 곧 진압됐고, 코로나19 3차 확산에 따른 '2명 초과 집합금지' 명령이 더해지면서 선거 연기에 대한 반발은 흐지부지됐다.
그러자 범민주 진영 의원들 간 내분이 벌어졌다.
선거 1년 연기에 따른 임기 1년 연장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선거 연기에 항의하며 원래 임기인 30일까지만 의원직을 유지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제6대 홍콩 입법회는 친정부 의원 41명과 범민주 진영 의원 22명, 독립파 의원 2명 등 총 65명으로 구성돼 있다.
임기 연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은 의회에 남아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쪽은 선거 연기 자체가 반민주적인 처사이기 때문에 임기 연장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맞섰다.
이에 의회 잔류를 주장한 쪽이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따르겠다고 제안했고, 지난 21일부터 범민주 진영 지지자 739명을 포함한 2천579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소규모 조사가 진행됐다.
◇ 박빙의 여론조사…"강경파 의식해 급진적으로 변해야 할 것"
지난 29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로 범민주 진영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응답자의 47.1%는 의원들이 의회에 남아야 한다고 답했고, 45.8%는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7%는 의견을 결정하지 못했다.
어느 쪽도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데다 양쪽 의견이 근소한 차이를 보이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따르겠다고 했던 잔류파에 힘이 실리지도 않는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잔류를 주장했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범민주 진영 22명 중 대다수인 19명이 1년 연장된 임기를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2명의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날인 지난 28일 애초 주어진 임기만 채우고 사퇴하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1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정치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잔류를 결정한 민주당 대표 우치와이(胡志偉)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면서 "의회에 남아 대중을 위해 목소리를 계속 내고 홍콩의 자유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의 모든 사악한 정책을 막아서겠다"고 했다.
공민당의 앨빈 융 주석은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가 서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면서 "우리는 앞으로 (잔류) 반대 쪽에게 우리와 연대하는 의의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잔류 결정이 홍콩보안법 제정과 저명한 민주 인사 체포 등 반대파에 대한 중국의 탄압으로 이미 약화된 범민주 진영의 분열을 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회에 남는 것은 중국 정부의 민주적이지 않은 결정을 따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고, 사퇴를 하면 그나마 정부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식적 지위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문대 정치 과학자 이반 초이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범민주 진영은 사퇴를 요구한 강경파 지지자들을 끌어안기 위해 지금보다 급진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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