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수교 30주년] 라브로프 러 외무 "푸틴 방한 코로나19 정상화 맞춰 논의"
"한반도 문제, 남북·북미가 자신들끼리만 단시간에 해결하려 해선 안 돼"
"남북러 3각협력 실질적 조치 필요…'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가 첫행보"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러시아 간 고위급 대화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하는 문제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정상화되는 대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양국 수교 30주년 기념일(30일)을 맞아 연합뉴스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30주년 기념행사들을 불가피하게 연기해야 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 비핵화 협상 재개 방안과 관련 "남북한과 북미가 해묵은 한반도의 모든 종합적 문제를 단시간에 그리고 자신들끼리만 해결하려 시도하지 말고, 양자 관계 정상화와 상호 신뢰 강화에 집중하면서, 관련국 공동의 노력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 해제를 기다리지 말고 북한 나진항을 통한 러시아 석탄의 한국 운송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남북러 협력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다음은 라브로프 장관과의 일문일답.
-- 오는 30일이 한-러 수교 30주년이다. 양국 관계 현황과 전망을 어떻게 평가하나. 가까운 시일 내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계획돼 있는가.
▲ 지난 30년 동안 양국은 거의 '제로'에서 시작해서 정치, 통상·경제, 과학·기술, 인적교류 등의 분야에서 상당한 생산적인 협력 경험을 축적했다. 현재 두 나라는 상호 유익한 실질적 협력뿐 아니라 양국 일반 국민들의 상호 호감에 바탕을 둔 진실로 선린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로 연결돼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양국 간에는 고위급 대화를 포함해 정기적인 정치적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8년 6월 21~23일 이루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보건·전염병 상황이 정상화하는 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관련한 문제들의 논의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한국은 러시아의 핵심 통상·경제 파트너 가운데 하나다. 양국 교역 규모는 250억 달러에 근접했다. 우리는 러-한 지역협력포럼 틀 내에서의 공조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제3차 포럼 회의가 내년에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문화-인적교류 분야 관계도 심도 있게 발전하고 있다. 뛰어난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가, 연극인, 발레 예술가 등의 방한 공연이 변함없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관광 교류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27만명 이상의 러시아인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약 43만명의 한국인이 러시아를 다녀갔다. 관광객의 지속적 증가는 주로 2014년 체결된 러-한 비자면제협정 덕분에 가능했다.
수교 30주년에 맞춰 대규모 공동 프로젝트인 '상호교류의 해'를 추진키로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행사를 연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내년에 이 행사들을 성공적으로 치르려고 한다.
-- 수교 이후 양국 협력이 지속해서 발전해 왔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지만, 협력 잠재력이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 지난 30년간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충분히 가동하지 못했다는 데 동의한다. 양국 경제 관계의 미흡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투자 분야다. 예를 들어, 현재 러시아 극동에서 한국 기업들은 24억 루블(약 36억원) 규모의 7개 프로젝트만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 지역에서 한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본다. 현재 시베리아·극동 지역에 적용되고 있는 투자 특혜제도는 부정적 경향을 극복할 유리한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본다. '선도개발구역'과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제도의 틀 내에서 한국 투자자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겐 의료, 항만 인프라, 선박 수리, 관광, 농업 분야 등에 걸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좋은 축에 드는 조건들을 제안하고 있다.
이 분야들 가운데 다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에 제안한, 양국 간 우선순위 경제 협력 분야인 '9개 다리'(Nine Bridge)에 포함돼 있다.
아직 실현되지 못한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의 잠재력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는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북한을 경유하는 러시아 천연가스와 전력의 한국 공급 사업 등을 포함한 3각 협력사업 추진을 지지한다. 이 사업 추진은 세 나라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강화하는 데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 해제를 기다리지 말고 이 분야에서의 실질적 조치들에 착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유엔 안보리 제재 예외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한국 기업들의 참여 하에 나진항을 통해 러시아 석탄을 한국으로 운송하는 것이 이 방향에서의 첫 번째 행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어떻게 하면 협상의 교착 국면을 타개할 수 있다고 보나. 관련국들이 어떤 조처를 해야 할까.
▲ 러시아는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모든 종합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전반적 협상 과정을 변함없이 지지해왔다. 남북,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한국, 북한, 미국의 노력을 지원해 왔고, 파트너들의 건설적 기획에 협력해 왔다.
하지만 동시에 말에서 행동으로, 이미 이루어진 합의들의 실질적 이행으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몇 년 동안에 적지 않은 합의들이 있었다.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 공동성명,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등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합의들이 이행 단계로 접어들었을 때 관련국들은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조치를 취하라'라거나 추가적 양보를 하라는 요구와, 여러 이유로 아직은 이행하기 어려운 일들의 실행을 미루자는 요청 등이 나왔다.
이것이 후속 접촉에 대한 관심의 일정한 상실을 초래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반도 정세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남아있고 관련국들도 대화를 거부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파트너들에게 아직 크지는 않지만, 서로를 향한 실질적인 행보를 취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남북한과 북한·미국이 해묵은 역내의 모든 종합적 문제를 곧바로 그리고 자신들끼리만 해결하려 시도하지 말고, 양자 관계 정상화와 상호 신뢰 강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역내 종합적 문제 해결은 모든 관련국의 과제이며, 그것은 서로의 합법적 이해를 존중하는 공동의 노력으로만 풀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해결 구상도 그러한 다자적 작업 추진을 지향하고 있다.
-- 러시아는 지난 2017년 중국과 함께 한반도 문제의 종합적 해결 방안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양국이 이 로드맵을 보완한 '행동계획'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행동계획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에 대한 협상 참여국들의 반응은 어떤가.
▲ 실제로 2017년 러시아와 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 '로드맵'을 발표했으며 다른 나라들의 동참도 요청했다. 미국, 한국, 북한, 일본 등이 이 구상의 실행에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이후 사건들은 주로 러-중 문서의 궤도를 따라 진행됐다.
로드맵 첫 단계는 북한이 핵시험 및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미국과 한국은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2단계는 정기적 양자 접촉을 통한 북미, 남북 관계 정상화에 관한 것이었다.
이 협상 트랙에서 드러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칙적으로는 로드맵의 3단계, 즉 한반도의 모든 종합적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협력 재개 단계에 접근했다고 본다.
이 논리에 따라 우리는 2019년에 상응하는 '행동계획' 마련에 착수했다. 행동계획에선 군사, 정치, 경제, 인적교류 등 4개 주요 분야에서 관련국들의 향후 공동 행보를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우리는 인위적 연계 없이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 같은 공동 행보들이 동시적으로 취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이러한 행보들은 다양한 형식의 작업 조율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최종적 정치적 해결이 유엔의 필요한 지원 하에 남북한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문서의 종합적 성격으로 인해 모든 행동은 서로서로 보충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일정한 방향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문서에서 언급된 행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북 제재의 점진적 해제다. 우리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협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 측의 입장도 이해한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북한의 핵시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뒤에 도입됐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2018년 핵시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동결을 선언한 뒤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제재 체제의 점진적 완화를 포함해 북한에 대한 건설적 행보를 보여야 했다.
우리의 동료들은 새로운 러-중 제안에 관심을 보이고, 열성적으로 그것을 논의하며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당연히 다양하고 때론 대칭적으로 상반되기도 하는 각 측의 견해들을 한 문서에 반영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국 파트너들과 함께 미국, 한국, 북한 측의 견해를 고려해 '행동계획'을 수정했으며, 지난해 말에 다시 관련국들에 그것을 배포했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이 수정 문서에 대한 실질적 작업에 심각한 변경을 초래했지만, 우리와 다른 파트너들은 전면적 접촉이 가능해지면 그러한 작업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
--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하여 한-러 간에 어떤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나.
▲ 코로나19는 보건 분야에서의 양자 협력 활성화 필요성을 부각했다. 한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는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도 자국에서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감염병 대응에서 쌓은 경험들을 교환할 수 있으면 유익한 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팬데믹은 유감스럽게도 양자 교류 계획에 수정을 초래했다. 수교 30주년에 맞춘 기념행사들을 비롯한 일련의 교류들을 전염병 상황이 안정화할 때까지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적 정보통신기술은 우리가 파트너들과 소통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그 증거가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진 양자 행사들로, 10월 말로 예정된 러-한 경제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경제공동위) 양국 위원장 회담도 그중 하나다. 한국이 파트너국가로 정해진 모스크바 '공개 혁신' 국제포럼(10월 19~21일)에도 한국 측 대표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모든 양자 관계 현안들은 계획대로 해결될 수 있다.
최근 합의된 양국 정기항공편 운항 재개가 조만간 양국 간 협력을 위기 전 수준으로 돌려놓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계획과 관련해선 이미 언급한 '상호교류의 해' 외에 양국 문화부 채널을 통해 계획된 '문화교류의 해'와 한국에서의 '러시아 시즌스'(Russian Seasons) 프로젝트 틀 내에서 여러 행사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 한다.
(러시아 시즌즈는 외국 여러 도시에서 러시아 음악·연극·발레 공연, 영화 상영, 서커스 공연, 러시아 미술관 순회 전시회 등 수백건의 문화행사를 1년 내내 집중적으로 개최하는 러시아 정부 차원의 자국 문화 해외 홍보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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