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갈라진 유엔…트럼프 "中 책임" vs 시진핑 "연대 강화"

입력 2020-09-23 08:44
수정 2020-09-23 11:46
코로나에 갈라진 유엔…트럼프 "中 책임" vs 시진핑 "연대 강화"

주요 정상들, 75차 총회 일반토의 첫날 코로나 대응놓고 시각차

중러는 백신 공급 제안…트럼프의 패싱에도 북 문제 일부 거론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제75차 유엔 총회의 '하이라이트'인 일반토의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사상 최초의 원격회의 방식으로 막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각국 유엔대표부 대사 1명씩만 총회장 좌석을 지켰고, 정상들의 목소리는 미리 녹화한 영상 메시지로 대신 울려퍼졌다.

그러나 주요국 정상들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인식과 해법을 놓고 갈라진 모습을 그대로 노출, 대유행 극복을 위한 글로벌 협업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 트럼프 "중국 바이러스"에 中대사 "정치 바이러스 반대"

유엔본부 소재국 정상으로서 두 번째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 기술, 인권 등 여러 전선에 걸쳐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을 겨냥해 '코로나19 책임론'을 정면으로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리 녹화한 7분여에 걸친 연설에서 "보이지 않는 적인 중국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전투하고 있다"며 중국의 초기 대응을 맹비난했다.

그는 "유엔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계에 이 전염병을 퍼뜨린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등 직설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특정국에 대한 책임론보다는 글로벌 공동 전선을 강조하며 간접 반박했다.

시 주석 역시 사전 녹화 연설을 통해 "이 바이러스에 맞서 우리는 연대를 강화하고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며 코로나19의 '정치화' 중단을 호소했다.

총회장에 출석한 장쥔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기자들과 만나 "정치 바이러스에 반대한다"며 보다 노골적인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 "미중 싸울 때 아냐"…말리려는 국제사회

전대미문의 글로벌 보건위기 상황에서 수그러들지 않는 주요 2개국(G2) 갈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일반토의 시작을 알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개 최대 경제국이 자신만의 무역과 금융 규정, 인터넷과 인공지능(AI) 역량으로 지구촌을 갈라놓는 미래는 우리 세계가 감당할 수 없다"며 미중 '신냉전' 중단을 호소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도중에 벌어지는 갈등의 유일한 승자는 바이러스 그 자체"라고 경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오늘날 세계를 중국과 미국의 경쟁에 지배되도록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놨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서도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내 위구르족 강제노동 의혹을 거론하면서 유엔 조사단 파견을 촉구, 견제구를 날렸다.

◇ "우리 백신 제공하겠다"…정상들의 코로나 백신 홍보전

주요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 레이스가 벌어지는 가운데 자국 백신 제공 의사를 내놓은 정상들도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유엔 직원들에게 모든 수준 높은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특히 자발적 접종을 원하는 유엔과 그 산하조직 직원들에게 러시아 백신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러시아는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Ⅴ를 세계 최초로 공식 승인했으나, 대규모 3상 임상시험을 마치지 않은 상태여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시 주석도 이날 연설에서 중국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을 전 세계를 위해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 '코로나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데'…이란·쿠바 정상, 미 제재 성토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대상인 국가 정상들은 코로나19 위기에도 제재망이 풀리지 않은 데 대해 미국을 성토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에서 발을 밴 트럼프 행정부를 비난하면서 "차기 미국 정부는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압박, 핵합의 복귀와 제재 철회를 간접 요구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도 연설의 상당 부분을 트럼프 행정부 비난에 할애했다. 그는 미국의 제재가 "심지어 팬데믹 시기에도 잔혹하게 강화됐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제 위기를 거론하면서 "불법적인 제재"를 끝내라고 촉구했다.

◇ 트럼프의 '패스'에도 북한 문제 일부 거론

매년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이 문제를 건너뛰었지만, 북한이 일반토의 주제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선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소개하면서 그의 외교 성과 중 한 사례로 북미관계 진전을 꼽았다.

크래프트 대사는 "대통령의 두려움을 모르는 비전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줬다"며 북미 간 첫 정상회담 개최, 북한 억류 미국인의 송환, 북한의 핵·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 중단 등을 성과로 꼽은 뒤 외교적 긴장을 극적으로 낮추고 한반도에 평화를 불러올 "지속적 합의를 위한 시작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이것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정치적 해결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북한과 협상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왔다"며 "우리는 여전히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대했다.

또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이고 부당한 제재를 강하게 규탄한다"며 우방국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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