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차기총리 유력 스가, 소비세 인상 거론했다가 사실상 번복(종합)
"장래 인상 불가피"→"10년간은 소비세 인상 불필요"
소비세 민감성 의식한 듯…이시바·기시다 '유보 입장'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소비세 추가 인상 필요성을 거론했다가 바로 다음 날 '10년간은 필요 없다'며 사실상 번복했다.
일본 차기 총리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스가 관방장관은 10일 밤 민영방송 TV도쿄에 출연해 "장래의 일을 생각한다면 행정개혁을 철저히 한 뒤 국민에게 부탁해 소비세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며 소비세 인상에 찬성한다는 의미인 동그라미(○)가 표시된 손팻말을 들었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일본) 정도의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구감소를 피할 수가 없다"며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사회보장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아베 총리의 후임을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스가 관방장관이 소비세 증세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서 이날 발언이 매우 주목받았다.
역시 총재 선거에 출마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은 같은 방송에서 소비세 인상에 대해 유보하는 입장을 뜻하는 세모(△) 표시의 손팻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스가 관방장관은 11일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전에 '앞으로 10년 정도는 (소비세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으며 나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당시 이후 발언해왔다"며 "어제 답한 것은 어디까지가 그다음을 염두에 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소비세 추가 인상이 필요한 시점에 관해 부연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향후 10년간 필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서 사실상 전날 발언을 뒤집은 양상이다.
차기 총리 선출을 자신하는 스가 관방장관은 선거 막바지에 소비세 추가 인상 필요성을 거론했다가 조세 문제의 민감성을 의식해 결국 한발 물러선 것으로도 풀이된다.
NHK는 투표권을 쥔 자민당 국회의원 본인과 전국 방송국을 통해 정세를 확인한 결과 스가 후보가 국회의원(394명) 표의 70% 이상을 확보하고,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지부연합회 대표(141명)가 행사하는 지방 표에서도 크게 지지층을 넓혀 당선이 유력하다고 11일 보도했다.
일본의 소비세는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간접세다.
물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소비자가 똑같이 부담하는 것이어서 저소득층 부담이 더 크다는 의미인 역진세 논쟁을 일으키는 등 선거 때마다 민감한 쟁점이 돼 왔다.
실제로 1989년 4월 3%의 세율로 일본에 처음 도입된 소비세는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은 비리 스캔들이 겹친 여파로 소비세 첫 시행 2개월 만에 퇴진했고, 1997년 소비세율을 5%로 올린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도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물러났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소비세 인상 카드를 만지면 집권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소비세의 저주'가 통설로 자리 잡아 총리가 자신의 재임 기간에는 소비세 인상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앞서 민주당 정권 시절 완료된 입법에 따라 2014년 4월 소비세율을 예정대로 8%로 인상했으나 이후 계획된 10%로의 인상은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작년 10월 시행했다.
비록 건강을 이유로 들었지만 아베 총리도 결과적으로 소비세율을 재차 인상한 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임으로 내몰린 상황이다.
작년 10월의 소비세율 인상 후에 개인소비 위축이 심해지고,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올해 2분기(4∼6월)까지 3개 분기 연속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소비세율을 장기적으로 20∼26%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