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시신도 못찾은 '카슈끄지 암살' 2년만에 봉합

입력 2020-09-08 12:44
사우디, 시신도 못찾은 '카슈끄지 암살' 2년만에 봉합

사우디 법원, 살해 일당 징역 7∼20년형 확정…살해 동기·경위 미궁

카슈끄지 약혼녀 "사우디, 진실 덮었다" 비판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타국에 주재하는 자국 외교공관에서 왕실을 비판한 언론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2년 만에 봉합됐다.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은 7일(현지시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8명에 대해 7∼20년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이로써 2018년 10월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발생한 카슈끄지 암살 사건은 2년 만에 법적 처분이 마무리됐다.

이날 형이 확정된 피고인 중 5명은 지난해 12월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감형됐다. 사우디 국영 언론들은 올해 5월 카슈끄지의 유족이 범인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탄원한 점이 감형의 이유라고 전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르면 인과응보의 원칙인 '키사스'(눈에는 눈)에 따라 살인범은 사형에 처해야 하지만 유족이 용서하면 형벌이 줄어들 수 있다.

유족을 대리하는 변호인은 사우디 국영일간 알샤르크알아우사트에 7일 "샤리아가 실현된 공정하고 단호한 판결에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비록 공적 사법 절차에 따라 이 암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었다고는 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살해한 범인은 있지만 시신의 행방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데다 살해 동기나 경위도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밝혀진 정황을 종합하면 사건 하루 전 사우디에서 '협상팀'으로 불린 일당 10여명이 터키에 도착했고, 이튿날 서류를 발급받으려 총영사관을 찾은 카슈끄지를 살해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체류하면서 사우디 왕실을 비판한 카슈끄지를 설득해 귀국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결국 살해해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살해된 장소로 보이는 곳에서 녹음된 음성이 터키 언론을 통해 공개됐지만, 터키 정부로선 이 녹음을 사실로 확정하면 외국의 공관을 도청한 점을 자인하는 셈이어서 섣불리 이를 공인하지는 못하는 처지다.

이 녹음 파일로 미뤄보면 협상팀은 그를 토막살해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카슈끄지 시신의 행방은 묘연하다. 살해 추정 시각 뒤 총영사관에서 승합차가 자루를 싣고 떠난 장면이 CCTV에 찍히긴 했지만 그의 시신이라는 증거는 없다.

사우디 검찰은 협상팀이 그를 살해하고 터키 내 '협력자'에게 시신을 넘겼다고만 밝혔다.

이와 관련해 터키에서 진행되는 재판에 7월 증인으로 출석한 총영사관의 터키인 직원은 "총영사 관저에 있는 탄두르(인도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쓰는 가마 형태의 오븐)에 불을 지피라는 지시를 받았다"라고 증언했다.

그의 시신을 탄두르에 넣어 태워 인멸했을 수 있다는 정황이긴 하지만 이 직원 역시 시신은 보지 못했다.

사우디 법원은 형이 확정된 피고인들의 신원과 정부 내 직책도 공개하지 않았다.

사우디 검찰과 법원은 이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는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 2명을 기소하지 않거나 무죄 석방해 연결 고리를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배후설을 차단했다.

수사를 맡은 사우디 검찰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살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현장에 있던 협상팀의 자체 판단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국제 인권단체에서 사우디 사법부의 판단을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 정부는 반인권·반인도적 범죄 행위를 이유로 이들 최측근 2명을 지난해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무함마드 왕세자를 암살의 배후로 판단했다.

중동의 '젊은 계몽 군주'의 이미지로 주목받았던 무함마드 왕세자는 카슈끄지 살해 사건 직후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인을 제거하는 '냉혈 통치자'로 평판이 추락했지만 현재 위세는 여전하다.

7일 사우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카슈끄지의 약혼녀였던 하티제 젠기즈는 "사우디 당국은 누가 살해에 책임이 있는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 누가 계획했는지, 누가 명령했는지도 모른다. 시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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