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토르티야 가게'…멕시코 마을의 특별한 수업

입력 2020-09-07 01:02
'우리 학교는 토르티야 가게'…멕시코 마을의 특별한 수업

집에 TV·인터넷 없는 아이들을 위해 상점들이 임시교실 마련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남쪽 틀란판의 '할머니 토르티야집'에는 매일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모인다.

마스크와 플라스틱 얼굴 가리개로 무장한 아이들은 오자마자 손을 씻은 후 가게 앞에 주차된 낡은 트럭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푼다.

집에 TV도 인터넷도 컴퓨터도 없는 동네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교실이다.

6일(현지시간) 멕시코 언론과 AP·AFP통신 등이 소개한 이 특별한 교실을 만든 사람은 토르티야 가게를 운영하는 달리아 다빌라(34) 부부다.

멕시코인들의 주식인 토르티야를 사기 위해 매일 가게를 찾는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온 다빌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이웃들이 자녀들의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많은 나라처럼 코로나19 탓에 학교 문을 닫은 멕시코는 지난달 4개 방송사와 협력해 TV 수업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데 비해 TV 보급률은 94%에 달한다는 데서 고안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학년이 다른 자녀가 둘 이상 있을 경우엔 TV 1대로는 충분치 않다.

또 TV로 수업을 듣더라도 이메일로 교사에게 과제를 보내거나 하기 위해선 인터넷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멕시코의 인터넷 보급률은 56%인데, 그나마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3분의 1에 못 미친다.

다빌라 부부는 심장병으로 잃은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어려운 이웃 아이들을 돕기로 했다. 가게 앞에 낡은 픽업트럭을 세워놓고 TV 한 대와 가게에서 쓰는 무선 인터넷을 제공해 아이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비를 맞아 TV가 고장 나자 이웃들이 새 TV를 기부했다. 노트북과 태블릿, 스마트폰 1대씩은 물론 연필, 공책, 음식까지 기부 물품이 늘어났다.

인근 철공소 등도 공간을 제공하고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는 자원봉사 선생님도 생겨나면서 '희망의 모퉁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하루 50명가량의 아이가 '할머니 토르티야집'을 찾는데 좁은 공간에 한꺼번에 아이들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간대나 수업 공간을 달리하고 있다.

다빌라의 남편 페르난도 로사노는 "스마트폰이나 TV, 컴퓨터를 살 돈이 없는 부모들이 많다"며 "아이들이 1년을 놓치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전 세계 수백만 명"이라고 말했다.

철공소에서 공부하는 호세 마리오는 "학교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인터넷으로 숙제를 해야 할 때나 인쇄가 필요할 때 여기엔 우리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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