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선언 전인데도 '스가 대세론'…파벌 짬짜미 정치 논란
아사히 "파벌 중심 다수파 공작" 비판…소장파 당원 투표 요구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의 차기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공식 출마 선언도 하기 전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대세론이 부상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사의 표명을 하기 전날까지도 차기 총리 도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은 스가 관방장관이 갑자기 세를 확대한 것은 파벌 정치의 폐해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가는 2일 공식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에 대한 지지가 확산한 과정을 보면 정책 논쟁 등은 제쳐두고 승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추종하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1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국회의원 54명이 속한 아소파를 이끄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후보군 중 한 명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이 지난달 30일 지원을 요청하자 '아베 총리의 지지'를 얻어오라고 조건을 걸었다.
기시다는 바로 다음 날 아베 총리를 면담했으나 아베는 "내 입장에서 개별 후보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삼가겠다"고 반응했다.
아베가 기시다의 지원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 알려지자 아소파는 스가를 밀어주기로 결정했고 몇 시간 뒤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98명)도 스가를 지지하기로 한 사실이 전해졌다.
다케시타(竹下)파(54명) 내부에서도 스가를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이시하라(石原)파(11명)도 스가를 지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지지가 빠른 속도로 확산한 것은 향후 새 내각이 출범한 후를 염두에 둔 대응으로 풀이다.
총재 선거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했는데 스가가 집권하면 해당 파벌이 조각(組閣)이나 자민당 간부 인사에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과 그의 측근들을 철저하게 냉대한 바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각 파벌은 승산이 적은 모험을 하기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일찍부터 줄을 서는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집행부는 당원 투표를 생략하고 국회의원 중심의 약식 투표로 총재를 선출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파벌 수장 몇 명이 차기 총리를 사실상 좌우하는 형국이 펼쳐질 수 있어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스가에 대한 지지가 확산한 것에 관해 자민당의 한 중견 의원은 "장로(長老)가 모여 일을 결정하는 파벌 짬짜미(담합) 정치로 돌아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파벌을 중심으로 한 다수파 공작이 선행한다"며 "너무나 내부 논리가 우선시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1일 사설을 썼다.
신문은 특히 당원 투표를 생략하고 국회의원 중심으로 자민당 총재를 선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에 관해 "당원들의 중요한 권리인 투표권을 빼앗으면서까지 새 총재 선택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밀실 정치'가 재연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자민당의 소장파 및 중견 의원 145명은 당원 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을 전날 지도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일부 유력 정치인이 후임자 결정을 주도했다는 인상을 주면 밀실 정치로 비칠 것이며 국민의 불신을 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라고 도쿄신문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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