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임 막전막후…몸 이상 함구 속 "더 할 수 없을까" 갈등

입력 2020-08-29 15:05
수정 2020-08-29 15:40
아베 사임 막전막후…몸 이상 함구 속 "더 할 수 없을까" 갈등

전날 저녁부터 전화 안 받아…만류로 "결단 흔들릴까 경계한 듯"

"지난달 중순부터 몸 이상…체력ㆍ면역 저하 속 코로나19 우려"

13년전 "몸ㆍ마음 바쳐 직무수행"…맹세 이틀후 사퇴 전철 피해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의 건강 악화 징후는 이달 초부터 감지됐으나 그가 사직할 뜻을 굳힌 후 발표 당일까지 철저히 비밀로 유지해 정권 핵심 인사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아베, 맹우 아소에게도 당일에서야 결심 말해

아사히(朝日)신문, 요미우리(讀賣)신문, 도쿄신문 등이 29일 전한 뒷얘기를 보면 아베 총리는 전날 오전 총리관저에서 각의를 마치고 정치적 맹우(盟友)인 아소 부총리를 약 35분간 독대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아소에게 사의를 드러냈다.

아베 총리가 "식욕이 없어졌다. 지병 악화로 국정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자 아소 부총리가 "통원하면서 직무를 계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만류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계속하겠다는 결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날 밤 파벌 간부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총리는) 건강해졌으니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던 아소 부총리는 아베 총리를 강하게 만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의 앞날과 자신이 이루지 못한 헌법 개정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하며 사의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거취와 관련해 아소 부총리와 상의하는 것을 피해 왔으며, 27일 저녁 이후에는 전화를 받지도 않고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아베 총리 주변에서는 강하게 달래고 만류하면 결단이 흔들릴 것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집권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베 총리가 아소 부총리에게 그만두겠다고 설명하고 있는 동안 TV 프로그램에 녹화장에서 "퇴진은 절대 없다"고 단언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1차 집권기(2006년 9월 26일∼2007년 9월 26일·366일) 때 아베 총리로부터 사의 표명에 관해 사전 연락을 받았던 여당의 한 간부는 "3일 전에 전화로 이야기할 때는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녀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13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구한 셈이다.

◇ 건강 이상 조짐 있었다…"지난달부터 몸에 이상"

외부에 알려지기 전부터 이상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28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6월 정기검진에서 (궤양성 대장염) 재발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후에도 약을 먹으면서 전력으로 직무에 임해왔으나 지난달 중순부터 몸 상태에 이상이 생겼고 체력을 꽤 소모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8월 초순에 궤양성 대장염의 재발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최근 병원에 간 사실이 알려진 이달 17일보다 훨씬 전에 건강 문제가 확연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패전일(8월 15일) 추도식을 끝낸 후 야마나시(山梨)현의 별장에 가서 골프를 하곤 했는데 올해는 바로 사택으로 돌아갔다.

아베 총리의 몸 상태를 걱정한 아소 부총리가 찾아와 "얼굴에 패기가 없다. '검사 입원'이라고 둘러대고 조금 쉬면 어떠냐"고 권했다.

이틀 뒤 아베 총리가 게이오대(慶應大) 병원을 방문하면서 비로소 건강 이상설이 증폭했다.

건강 관리를 담당한 것은 게이오대 병원 주치의가 이끄는 의료팀인데 그간 아베 총리가 비밀리에 진료를 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격무가 이어지고 피로가 누적되면 사택이나 도쿄 롯폰기(六本木)의 피트니스클럽에서 아베 총리에게 대응하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달 10일 롯폰기 피트니스클럽에서 3시간 30분 정도 머무른 것으로 파악됐다.

측근들도 아베 총리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실 자체는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전에는 총리관저에서 비서관 등과 함께 저녁 도시락을 먹었으나 최근에는 식사하지 않고 자택으로 귀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총리의 식욕이 줄었다", "총리가 야위었다"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달 21일에는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 (재집권) 7년 8개월의 피로가 상당히 심각하지만 1차 정권 때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고 주변에 푸념했다.

앞서 19일에는 "새로운 약을 시험했다. 잘 듣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기 쉽게 된다"고 측근에게 말하기도 했다.

당시 측근은 "병 상태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아베 총리는 "병에 관한 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반응했다.

◇ 아베 "좀 더 할 수 없나 갈등했다" 눈시울 붉히며 회견

아베 총리는 24일 진료를 받고서 사임을 최종적으로 결정했으며 "혼자서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퇴 여부, 시기와 방법을 놓고 갈팡질팡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계속 왔다 갔다 했다"며 사임 결정을 두고 망설임이 있었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28일 회견에서는 "물론 조금 더 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고 언급했으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거론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첫 집권기인 13년 전에 국회에서 소신 표명 연설까지 한 후 갑자기 사임한 것을 거론하며 "만에 하나 같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사퇴의 배경을 언급했다.

당시 참의원 선거 참패, 정치자금 문제로 인한 각료 사임,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에 대한 야당의 반대 속에 사퇴 압박이 이어졌으나 아베 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2007년 9월 10일 "내각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한시 빨리 회복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 임하겠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총리직을 수행할 것을 맹세한다"고 임시 국회 개원을 계기로 소신표명 연설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틀 뒤 돌연 사의를 표명해 '정권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두고두고 들었다.

이를 의식했는지 아베 총리는 이번 회견에서는 "임기 도중 사임이므로 여러 비판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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