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보다 저물가·실업사태가 문제…장기 저금리시대 연 연준
'실업률↓→물가↑' 공식 깨져…인플레 전망만으로는 금리 안올려
파월 "최대고용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목표"…시장 반응은 '혼조'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7일(현지시간) 공개한 평균물가안정 목표제는 30년 넘게 유지한 통화정책 기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한 것이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물가상승을 자극할 우려가 커진다는 판단에 따라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선제 대응으로 금리를 인상하던 오랜 관행과는 사실상 결별하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연준은 이날 발표에서 2012년 정한 물가상승 목표치인 2%를 넘어서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장기적으로 평균 2%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전제하에 일정 기간에는 2%를 초과하는 물가상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그동안 연준이 지상과제로 삼았던 '물가 안정' 목표와 다소 배치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그 파장이 더욱 주목된다.
◇ "물가안정이 목표"→"너무 낮은 물가는 위험"…고용부양도 고려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 우리의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결단은 최근 경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염려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실업률 감소→물가상승 압력 증가'의 전통적인 공식이 최근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통화정책 전략 변경의 배경이 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진단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평균물가안정 목표제 채택이 "인플레이션 유발 없이도 튼튼한 노동시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우리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연준은 2015∼2018년 실업률이 하락하는 동안 경기 과열을 예방하기 위해 9차례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나, 인플레이션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판론자들은 연준이 이유 없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며 금리 인상 결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연준 역시 이제는 너무 낮은 물가가 높은 물가보다 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NYT가 전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작년 초 선제적 금리 인상 기조를 갑작스럽게 포기하고 18개월간의 전략 검토를 거쳐 이날 발표를 내놨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물가는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할 수 있다"며 "더 낮은 물가와 물가 전망이라는 역순환"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 수정의 또 다른 중요 배경은 고용 문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미국에서 '고용시장 부양'의 필요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고용과 인플레이션에 하강 리스크가 높아졌다"며 "전방위적 수단"의 활용 약속을 재확인했다. 파월 의장도 "우리의 전략 수정은 최대 고용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목표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미 금리와 물가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대공황 이후 최악인 코로나19발(發) 경기침체를 맞닥뜨린 연준이 향후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적 여지를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는 차원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인플레 전망만으로는 금리 안올린다…주택·생필품 가격 상승 가능성도
이날 전략 수정에 따라 연준은 앞으로 노동시장이 최대 고용 수준에서 얼마나 모자란지에 따라 금리 인상을 결정하게 된다.
즉, 단순히 실업률이 낮아져서 물가상승 전망이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금리를 올리지 않고, 실제로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에 다다를 것이란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고 움직이겠다는 의미라고 WSJ은 분석했다.
따라서 연준이 향후 몇년 동안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물가가 2% 목표치를 한동안 밑돌 경우 그 직후에는 '오버슈팅'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정 기간'과 '완만한 수준'이라는 단서를 붙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연준이 2012년에 2% 목표치를 정한 이후 물가상승률이 여기에 도달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조가 고용 시장을 부양하는 동시에 자산 거품을 발생시킬 가능성도 내포한다는 점이다.
장기간 낮은 수준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예고한 셈이어서 당장 주택 매매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에는 식료품과 같은 보다 작은 생필품 물가 상승도 부담이다.
연준도 이런 가능성을 간과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우리는 식량, 휘발유, 주택과 같은 필수품 물가 인상이 특히 직장과 소득을 잃은 많은 가정이 맞닥뜨린 부담을 가중할 수 있음을 특히 유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 뉴욕증시 오름세…나스닥·금값은 하락
시장은 연준의 발표를 완화적 정책 변화로 해석했으나 움직임은 다소 엇갈렸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60.35포인트(0.57%) 오른 28,492.27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5.82포인트(0.17%) 오른 3,484.55에 각각 장을 마쳤다.
다우 지수는 장중 한때 2020년 연초 대비 상승으로 전환, 코로나19 충격파에 따른 하락분을 거의 극복하기도 했다.
S&P 500 지수는 사상 처음 장중 3,500선을 넘었고, 종가 기준으로도 연일 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다만 시장의 반응이 아주 뜨겁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9.72포인트(0.34%) 떨어진 11,625.34에 마감됐다.
평균물가안정 목표제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지목되던 금은 오히려 하락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1%(19.90달러) 떨어진 1,932.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예상됐던 조치라는 반응이 많았고, 일부 투자자는 오히려 파월 의장의 연설 중 차익 실현을 위한 거래에 나서면서 금값을 끌어내렸다고 마켓워치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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