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거주자인 척 거액 유출…베벌리힐스·한강변아파트에 펑펑"
스위스·홍콩에 돈 숨겼다가 금융정보교환협정으로 덜미
국세청, 역외탈세 혐의 22건 세무조사 착수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 국내에서 자수성가한 사주 X는 외국 영주권자 신분을 이용해 수십억원을 외국의 본인 명의 계좌로 송금했다. 국내 거주하지 않는 외국 영주권자는 국외 송금이 까다롭지 않기에 거액을 송금할 수 있었다.
외국에 거주하는 배우자와 자녀는 사주 X가 보낸 자금을 인출해 미국 베벌리힐스와 라스베이거스 고급주택을 사들였다.
일부 자금은 다시 국내로 들여와 20억원대 한강변 아파트를 사는 데 썼다.
사주의 배우자와 자녀는 외국에 거주하면서도 국내 법인으로부터 수억원을 급여 명목으로 받았으며, 국내 법인은 베벌리힐스 주택을 해외 영업소로 등록하고는 유지·운영비로 수십억원을 송금했다. 이 돈은 사주 배우자와 자녀의 생활비로 쓰였다.
# 첨단의약품제조사 사주 Y는 해외 관계사 A에 약품제조 핵심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약품을 저가로 판매하는 수법으로 국내에 귀속돼야 할 이익을 해외로 이전한 후, 따로 해외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B가 A에게 컨설팅 비용과 중개 수수료를 지급받은 양 거래를 꾸몄다.
사주 Y는 이런 식으로 2단계를 거쳐 해외로 빼돌린 법인자금 백수십억원을 스위스 비밀계좌에 예치했다가 다시 B 법인 계좌로 이동시키는 등 역외에서 자금세탁을 반복했다.
사주 Y는 스위스 계좌정보가 한국에 들킬 리 없다고 여겼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스위스는 금융 비밀주의가 철저한 국가로 통하나 2018년부터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에 따라 한국인이 스위스에 개설한 금융계좌정보를 한국으로 통보한다.
# 사주 Z는 자신이 운영한 국내 법인을 외국법인 A에 매각하면서 매각대금 중 1차로 받은 수백억원만 주식 양도소득으로 신고하고, 수익연계 보너스 약정으로 얻은 수익은 숨겼다.
수익연계 보너스 약정이란 주식 양도 이후 법인이 목표수익을 달성하면 추가로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말한다.
사주 Z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보너스를 신고하지 않고 홍콩에 개설한 비밀계좌로 받아 숨겼다.
그러나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에 따라 작년부터 홍콩 금융기관이 보유한 금융 자산이 국내로 통보되며 사주 Z의 계좌도 발각됐다.
◇ 국세청, 자산가·법인 역외탈세 혐의 22건 세무조사 착수
국세청은 이처럼 국내 자산과 소득을 해외로 빼돌려 세금을 탈루하는 자산가와 법인의 역외탈세 혐의 22건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역외탈세 조사 대상은 ▲ 국내 비거주자 위장(6건) ▲ 해외자산 은닉(7건) ▲ 해외 현지법인으로 자금 유출(9건) 유형으로 나뉜다.
위 사례에 등장하는 사주 X는 '비거주자로 위장한 탈세' 혐의에 해당한다. '국적 쇼핑'으로 취득한 외국 국적이나 영주권을 내세워 과세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소득을 해외로 빼돌리고 소득을 편법 증여하는 수법이다.
이번 조사에는 스위스와 홍콩처럼 그동안 금융정보 접근이 매우 어려웠던 지역에 '비밀계좌'를 유지한 사주 등도 혐의가 포착돼 정밀 검증을 받는다.
이들의 계좌는 최근까지 과세 사각지대에 있다가 금융정보자동교환 상대국이 늘어나면서 해외 은닉 자산으로 새롭게 노출됐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에서 이중계약서나 차명계좌 등을 활용한 세금포탈행위를 확인하면 최대 60% 가산세를 물리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예고했다.
국세청은 "코로나19로 어려운 경제여건을 고려해 전체 조사건수는 대폭 축소하지만 반사회적 역외탈세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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