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학살 3주년…송환은 기약 없고 코로나19 위험도 확산
로힝야족 '시민권·이동 자유' 요구에 미얀마 정부 묵묵부답
방글라데시도 '냉담'…100만여명 밀집 난민촌에 코로나 공포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이슬람계 소수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한 미얀마군의 학살 사태가 발생한 지 25일로 3년이 됐다.
유엔 최고법정이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로힝야족 학살을 막기 위한 조처를 하라는 명령까지 내리면서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까지는 나아갔다.
그러나 실질적인 학살 방지 조치는 물론, 100만명가량이 피신해 생활 중인 방글라데시 난민촌 내 로힝야족들의 송환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이런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방글라데시 난민촌은 물론 미얀마 내 로힝야 집단거주 캠프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 유엔 "학살 방지 조치하라"…미얀마 정부 쇠귀에 경 읽기?
유엔 최고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올 1월 23일 미얀마 정부에 소수 로힝야족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권한 내의 모든 조처를 할 것을 명령했다.
ICJ는 또 미얀마에 4개월 후 미얀마가 이번 명령을 따르기 위해 어떤 조처를 했는지에 대해 보고하고 이후 6개월마다 보고할 것을 명령했다.
앞서 미얀마군은 2017년 8월 서부 라카인주에서 종교적 탄압 등에 반발한 로힝야족 반군이 경찰초소를 공격하자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집단 성폭행, 학살, 방화가 곳곳에서 벌어져 로힝야족 마을들이 초토화되고 수천 명이 사망했다. 그 여파로 로힝야족 70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지난해 11월 서아프리카의 무슬림 국가인 감비아는 로힝야족이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됐다면서 이슬람 협력기구(OIC)를 대신해 지난해 미얀마를 집단학살 혐의로 ICJ에 제소했다.
IC 판결과 관련해 미얀마 정부는 4월 각 부처 및 지방 정부에 로힝야 학살 행위들을 저지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당시 성명에서 "대통령 명의 지시는 ICJ의 명령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잔학 행위를 종식할 의미 있는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는 현실은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최근 3주년 성명을 통해 "미얀마는 ICJ의 조치를 준수하지도, 군의 잔학행위에 대한 신뢰할 만한 조사를 진행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로힝야족 단체는 ICJ 판결 이후에도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로힝야족이 미얀마군 포격에 숨지거나 다친 수십 건의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미얀마 '묵묵부답', 방글라데시는 '냉담'…기약 없는 송환
로힝야족들은 3년 전의 학살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권과 이동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는 묵묵부답이라는 게 인권단체들의 평가다.
HRW는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의 '안전하고 품위 있고 자발적인 귀환'을 위한 필요조건을 만들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도 최근 성명에서 "로힝야족 고통의 궁극적 해결은 미얀마 정부가 '라카인 자문위원회' 권고 사항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이끈 '라카인 자문위원회'는 2017년 최종 보고서에서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의 셰루 하투는 HRW에 "우리도 고향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지만, 정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1월 8일 문민정부 이후 처음 총선을 치르는 상황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여당이 국민의 절대다수인 불교도들이 반감을 가진 '뜨거운 감자' 로힝야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생각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로힝야족 송환을 위해 노력하던 방글라데시 측도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지난해 로힝야 학살 2주년을 맞을 당시 적극적인 송환 노력에도 로힝야족들이 안전을 이유로 응하지 않은 이후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됐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 직후 로힝야족 난민들에 대한 휴대전화 서비스 중단을 명령하고, 난민촌 내 인터넷 접속도 금지했다.
다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학살 3주년을 앞둔 24일 인터넷 접속 제한 조치는 풀겠다고 밝혀 태도 변화의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 엎친 데 덮친 격…코로나로 안전 위협받는 난민촌
코로나19 사태는 방글라데시 난민촌은 물론 미얀마 내 집단수용 캠프에서 '갇히다시피' 생활하는 로힝야족들에게 새롭게 다가온 위험이다.
2017년 이전에 미얀마에서 건너온 난민 등을 합쳐 100만명 안팎의 로힝야족이 생활하는 콕스 바자르 지역 내 난민촌에서는 지난 5월 처음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
이후 8월16일까지 모두 79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이중 사망자는 6명이라고 교도 통신이 세계보건기구(WHO)를 인용해 보도했다.
난민 캠프는 천과 대나무를 엮어 만든 임시 건축물이 밀집해 있으며 좁은 골목에는 하수가 넘쳐흐르는 등 환경이 열악하다.
이 때문에 보건 전문가들은 협소한 공간에 대규모 인원이 거주하는 난민 캠프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모하마드 알람(21)은 통신에 "난민촌에서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며 "마스크를 쓰고 모임을 갖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미얀마 내 로힝야족들도 코로나19 위험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13만명에 달하는 로힝야족이 서부 라카인주 주도인 시트웨 지역 인근의 캠프에 갇혀있다시피 생활하는데, 이곳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지난 16일 코로나19가 재발한 뒤 라카인주에서 72명의 지역감염 사례가 발생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시트웨 지역에서 나왔다.
보건 당국은 이에 따라 지난 20일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시트웨 지역 주민에게 자택 격리 조처를 하고 21일부터 야간 통행 금지령을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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