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재판소 "헤즈볼라 지도부, 레바논 총리 암살 개입증거 없어"

입력 2020-08-18 23:52
유엔재판소 "헤즈볼라 지도부, 레바논 총리 암살 개입증거 없어"

2005년 하리리 전 총리 암살사건…기소된 헤즈볼라 대원 4명 중 1명만 유죄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유엔 레바논 특별재판소는 18일(현지시간)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지도부가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에 개입한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고 레바논 매체 '데일리스타',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데이비드 레 특별재판소 재판장은 이날 재판에서 "헤즈볼라 지도부가 하리리의 암살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시리아 정권도 암살에 개입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 암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헤즈볼라 대원 4명 중 살림 아야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특별재판소는 기소된 나머지 헤즈볼라 대원 3명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사는 그동안 공판에서 헤즈볼라 대원 4명이 테러 전후 수십 개의 휴대전화로 하리리 전 총리의 행적을 감시하고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이를 공유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테러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아들인 사드 하리리는 이날 특별재판소의 판결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사드 하리리는 2009∼2011년 총리를 역임한 뒤 2016년 12월 다시 총리로 선출됐다가 작년 10월 실업난 해결, 부패 청산 등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 사퇴를 발표했다.

특별재판소는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레바논의 요청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네덜란드에 설치됐다.

친서방정책을 폈던 하리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 베이루트의 지중해변 도로에서 승용차로 이동하던 중 트럭 폭탄테러로 경호원 등 21명과 함께 사망하고 220여명이 다쳤다.

당시 하리리 전 총리의 가족은 시리아 정권과 헤즈볼라가 암살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는 내전에 휩싸인 이웃국가 레바논에 30년 가까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레바논의 정치, 행정 등 내정에 간섭하다가 2005년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 사건 여파로 레바논에서 철군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계기로 결성됐으며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는 1975∼1990년 내전이 끝난 뒤에도 의회의 승인 아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또 1992년부터 의회 선거에 참여하고 2005년에는 내각에도 진출하는 등 레바논 정치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헤즈볼라와 그 동맹은 2018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하며 정국을 사실상 주도해왔다.

그러나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과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한다.

특별재판소는 당초 이달 7일 하리리 전 총리 암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려고 했지만 수도 베이루트의 폭발 참사로 일정이 연기됐다.

이달 4일 베이루트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이 발생해 180여명이 숨지고 7천명 넘게 다쳤다.

하산 디아브 총리가 이끌어온 레바논 내각은 이달 10일 폭발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총사퇴를 발표했으며 현 내각을 지지해온 헤즈볼라도 수세에 몰린 상태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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