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세입자…전세없어 반전세로, 임대료·집값 안정도 '아직'
30∼40대 '패닉 바잉' 여전…강남 고가뿐 아니라 중저가 아파트값도 강세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홍국기 기자 = 정부와 여당이 잇달아 내놓은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을'(乙)의 입장에서 집을 알아보는 임차인들의 불안과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초기 전세가 품귀를 빚고 보증금이 크게 오르면서 전세를 구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보증금 마련에 진땀을 빼고 있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반전세나 월세 계약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금 집을 안 사면 영원히 못 살 것'이라는 조급한 마음에 '패닉 바잉'(공황 구매)에 나서는 30∼40대가 여전히 목격되고, 매수세가 붙으며 중저가·중소형 아파트값도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 전세 못 구해 반전세·월세로…"매달 생돈 내야 해 부담"
올해 12월 결혼을 앞둔 이모(34) 씨는 신혼집을 구하려 지난달부터 서울 마포구 일대의 전세 아파트를 알아보다가 조건에 맞는 전세를 구하지 못해 매달 60만원을 내는 보증부 월세로 계약서를 썼다.
이씨는 "내가 운이 없는 건지, 전셋집을 보러 가는 주말마다 정말 같은 집 전셋값이 수천만원씩 계속 올라 약이 오를 지경이었다"며 "지금 계약한 집도 원래 전세였는데 집주인이 임대차법 통과 후 반전세로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새 출발하는 입장에서 매달 월세로 '생돈'을 내야 해 부담스럽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신혼집 마련도 어려웠을 것 같다"며 "전셋값이 하도 올라 아예 집을 사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집값은 더 뛰고 있어서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안돼 포기했다"고 말했다.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는 품귀를 빚고 있다.
총 9천510가구로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현재 전세로 나온 물건이 10여개에 불과하다.
6천864가구에 달하는 같은 구 신천동 파크리오는 순수 전세는 찾아보기 힘들고, 반전세로 불리는 보증부 월세만 몇 건 나와 있다. 파크리오는 이달 들어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11건의 임대차 계약 중 7건이 반전세였다.
마포구 H 공인 대표는 "원래도 전세가 귀했는데, 임대차법 개정 직전부터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크게 올리거나 월세로 돌리고 있다"며 "이제 비싼 전세 아니면 반전세가 대세"라고 말했다.
전세 계약 기간이 길게는 4년으로 늘어나고 계약갱신 시 보증금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새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집주인들이 미리 보증금을 올리고,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전셋값은 서울 전역에서 오르는 분위기다.
마포구 공덕3삼성래미안 84.98㎡(이하 전용면적)는 지난달 3일 보증금 4억원(5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진 뒤 이달 7일 보증금 6억5천만원(7층)에 전세 계약서를 쓴 것으로 신고돼 한 달 사이 2억5천만원이 뛰었다.
성동구 금호동 래미안하이리버 84.99㎡는 지난달 11일 보증금 5억6천만원(18층)에 전세로 계약된 뒤 이달 8일 보증금 6억6천만원(11층)에 전세 거래가 성사돼 한 달 사이 1억원이 올랐다.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관악구 봉천동의 관악드림타운 84.96㎡ 전셋값도 지난달 31일 보증금 4억3천만원(6층)에서 이달 5일 5억1천만원(20층)으로 8천만원이 올랐다. 일주일 사이 20% 가깝게 오른 것이다.
◇ 임대료·집값 뛰면서 '패닉 바잉' 현상도…중저가 아파트 매맷값도 밀어 올려
전셋값이 뛰면서 반전세 값도 함께 오르고 있다.
헬리오시티 84.9㎡는 지난달 30일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90만원(3층)에서 이달 10일 보증금 3억원에 월세 240만원(29층)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송파구 S 공인 대표는 "전세 물건이 없어 가격이라는 게 무의미하다.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준공 27년 된 중저가 아파트인 동작구 사당동 극동 84.32㎡ 역시 지난달 29일 보증금 3억7천만원에 월세 15만원(15층)에서 이달 12일 보증금 4억원에 월세 25만원(11층)으로 임대 가격이 올랐다.
오르는 전셋값에 말 그대로 '공황 상태'가 된 실수요자들이 구매에 나서는 모습도 포착된다.
결혼 6년 차 송현욱(38)씨는 최근 관악구에 있는 6억원대 아파트를 서둘러 구입했다.
송씨는 "우리는 자녀가 없어 경제적인 압박이 덜하고 언제든 돈을 모아 집을 사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집값이 무섭게 오르고 전셋값도 뛰는 걸 보면서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50대 A씨는 "친구의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의사인데, 이들 부부가 최근 강남에 서둘러 아파트를 사더라. 안정적인 직업에 소득도 높아 집 걱정을 안 하던 친구들인데, 집값이 오르는 속도를 보고 놀라 집을 산 것"이라고 했다.
임대차 수요 일부가 매수로 돌아서면서 고가 아파트뿐 아니라 중저가·중소형 아파트값까지 강세가 유지되고 있다.
강동구 고덕아이파크 84.98㎡는 5월 12억5천만원(16층)에 매매된 이후 6월 13억5천만원(12층)에 거래됐고, 지난달 24일 14억8천만원(7층)에 팔려 신고가를 경신했다.
고덕동 S 공인 대표는 "전세는 물론 반전세, 월세 물건도 많지 않은 상황이고, 매매는 84㎡가 14억5천∼15억원에 시세가 형성될 만큼 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주공12단지 61.52㎡도 지난달 26일 6억4천800만원(6층)에 매매가 이뤄져 같은 달 16일 5억9천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열흘 만에 5천만원이 넘게 올랐다.
상계동 D 공인 대표는 "전세도 월세도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고, 매매도 물건이 거의 없다. 정부가 유도한 대로 법인이나 다주택자 매물이 나오는 모습은 이 지역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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