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큰 딸은 왜 아버지 성년후견 카드 꺼냈나

입력 2020-08-16 07:30
한국타이어 큰 딸은 왜 아버지 성년후견 카드 꺼냈나

남매간 경영권 다툼 vs. "빌 게이츠 같은 기업인으로 남기를"

성년후견 결정 나면 주식매입대금 현금증여 어려울 수도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000240](옛 한국타이어그룹)회장의 큰딸은 왜 아버지가 성년후견이 필요한 상태인지 판단해달라고 법원 문을 두드렸을까.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54)은 지난달 30일 서울가정법원에 조양래 회장(83)에 대해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조 회장이 차남 조현범(48) 사장에게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보유주식 전부를 2천400억원에 매도하며 승계구도를 사실상 확정한 지 약 한 달 만이었다.

세간에는 남매간 재산 갈등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분을 적게 받은 큰딸이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조 이사장은 아버지가 '빌 게이츠' 같은 기업인으로 남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경영권 다툼인가…주식매입대금 현금 증여가 변수

경영권 다툼이라고 하기에는 조 이사장의 지분은 너무 적고, 큰아들인 조현식 부회장(19.32%)과 둘째 딸 조희원 씨(10.82%)는 침묵하고 있다.

사실 셋의 지분을 합해도 30.97%여서 조 사장(42.9%)과 차이가 크고, 한정후견 효력도 과거로 소급되진 않는다.

변수는 조 사장의 주식매입대금이다. 조 사장은 2천200억원을 주식담보대출로 빌렸는데 결국은 이 또한 아버지로부터 받아서 갚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 증여를 받았다가 이후에 후견 결정이 나오면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증여가 취소되고 조 사장이 자금마련을 위해 주식을 일부 처분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면 지분 싸움이 성립될 여지가 커진다.

그래도 큰딸이 총대를 멘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미국 페어리디킨슨대 수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회사 경영과는 떨어져 지내다가 2018년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직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남편은 노재원 전 주중 대사의 아들인 노정호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다.

다른 재산 상속을 위한 협상 카드일 수도 있지만 이는 성과에 비해 품이 많이 드는 비효율적 전략으로 보인다.



◇큰딸 측 "조 회장, 재산 사회환원에 관심 많았다"

조희경 이사장 측은 16일 대리인을 통해 조 회장이 평소 신념대로 좋은 기업인으로서 이름을 남기도록 하는 마음과 회사가 잘되도록 하려는 책임감에서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이사장 대리인은 "조 회장은 '빌 게이츠' 같은 자선사업가로 거듭나려고 했고 브루킹스 연구소 같은 씽크탱크 설립에도 관심이 많아서 이와 관련해 조 이사장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이어 "조 이사장은 아버지의 사회공헌 동참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상속할 재산이 있으면 재단에 기부해달라고 했고 조 회장도 그렇게 약속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조 회장은 해외 가족기업처럼 재단, 이사회, 전문경영인, 자문기구를 통해서 합리적으로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평소에 윤리경영, 정도경영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조 이사장 측에 따르면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인 송경용 신부는 "조 회장은 사회공헌이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본인도 소유 지분은 상속하지 않고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조 이사장이 운영하는 또 다른 재단인 '함께걷는아이들'을 위해 내놓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함께걷는아이들 유원선 사무국장은 "조 회장은 10년간 181억원을 기부하고 거리 청소년 지원 현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며 "재단 사업과 장기 재정 방향까지 구체적으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유 국장은 "조 회장은 국민연금 수령액을 2015년부터 전액 후원했고 2016년에는 주식 기부가 가능한지 알아보라고 했다"며 "이에 2017년 주식기부를 받도록 성실공익법인 인증을 갖춘 뒤 보고하고 법무법인 태평양에 자문도 했다"고 말했다.

◇"가족 협의 중이었는데 갑자기…" vs. "큰딸이 왜 그러는지"

조 이사장 측은 심판청구 당시 "(조 회장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며 "이런 결정들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됐다"고 주장했다.

조 이사장은 대리인을 통해 "재단으로 지분이 들어오더라도 경영권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는 가족 내에서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믿었고 일부 논의도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조현범 사장이 구속되고 경영능력과 윤리성 등에서 문제가 제기되며 궁지에 몰리자 판단이 흐려진 아버지를 부추긴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조 회장은 지난달 31일 낸 입장문에서 "정말 사랑하는 첫째 딸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저야말로 저의 첫째 딸이 괜찮은 건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했다.

조 회장은 재산 사회환원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있으며 방법은 자신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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