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한국인 전범 마지막 생존자 "일본 보상" 촉구
이학래 동진회 회장, 일본 중의원 의원회관 기자회견서 주장
日시민단체 "한국인 전범·오키나와 피해 등 문제 해결해야"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태평양전쟁 한국인 B·C급 전범 중 마지막 생존자인 이학래(95) 동진회 회장은 12일 일본 정부에 보상을 거듭 촉구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일본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열린 '전후 75년, 남은 전후 처리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이라는 주제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고령인 이 회장은 40도에 육박하는 일본의 폭염 때문에 기자회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도쿄도(東京都) 내 자택에서 화상으로 참여했다.
동진회는 한국인 출신 B·C급 전범 모임이다. A급 전범은 침략전쟁을 기획·시작·수행한 지휘부가, B·C급 전범은 상급자 명령 등에 따라 고문과 살인 등을 행한 사람들이 해당한다.
이 회장은 17세 때인 1942년 일제에 징집돼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다이멘(泰緬) 철도 건설 현장에서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하다가 종전 후 연합군 포로를 학대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도쿄 스가모(巢鴨)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감형돼 1956년 출소했다.
이 회장을 포함해 한반도 출신 당시 조선인 148명이 태평양전쟁 전범으로 분류돼 23명이 사형을 당했다.
이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연합군) 포로가 많이 죽어 (포로감시원이) 미움을 받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그 책임으로 사형 판결을 받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물자 등의 보급이 턱없이 부족해 포로 중 환자가 발생해도 대응할 수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일본인 전범은 일본 정부가 지급한 연금과 위로금 등을 받았지만, 이 회장을 비롯한 한국인 전범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일본 국적을 상실해 일본 정부의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게다가 이 회장은 석방된 후 고향인 전라남도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전범의 멍에'를 쓰게 된 한국인은 '친일파'로 불리며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포기했다.
일본에 남은 이 회장은 다른 한국인 전범 생존자들과 함께 동진회를 결성해 60년 이상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해왔다.
이 회장이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이유는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은 23명의 동료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동료들의 억울함을 다소나마 위로해주는 것이 살아남은 나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인 전범에게는 연금에 위자료까지 지급하면서 한국인과 대만인 전범에게는 위자료나 급부금, 어떤 것도 지급하지 않는다"며 "너무나 부조리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는 '전국공습피해자연락협회'와 '시베리아 억류자 지원·기록센터', '민간 전쟁피해 보상을 실현하는 오키나와현민 모임',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 등 일본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
이들 단체는 공동 요청서에서 전쟁이 끝난 지 75년이 지났지만 ▲ 전국 각지의 미군 공습에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 문제 ▲ 오키나와 등 민간인 피해자 문제 ▲ 한반도와 대만에서 동원된 B·C급 전범 문제 ▲ 전후 소련 억류자 문제 ▲ 필리핀 잔류 일본인 국적 회복 문제 등이 남아 있다며 일본 정부에 이런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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