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첫 백신 명칭 '스푸트니크V'…백신도 우주개발 경쟁처럼?

입력 2020-08-12 04:36
수정 2020-08-12 14:20
러시아 첫 백신 명칭 '스푸트니크V'…백신도 우주개발 경쟁처럼?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명칭 차용

부족한 임상시험·불투명한 정보공개에 우려감 커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백신도 우주개발 경쟁처럼?'

러시아가 11일 세계 최초로 등록했다고 밝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과거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 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온다.



러시아가 백신의 명칭을 '스푸트니크 V'(Sputnik V)라고 지은 탓이다. 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러시아 전신인 소련이 전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이름이다.

당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미국에는 큰 충격이었고, 1960년대 미소 냉전 체제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우주 경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사건이기도 했다.

소련은 한발 더 나아가 1961년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 비행에도 성공해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를 배출한 국가까지 됐다.

다급해진 미국은 1961년 5월 60년대가 끝나기 전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고,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닐 암스트롱 등 3명의 우주인을 태우고 최초의 달 탐사를 마친 뒤 귀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유럽, 중국 등 전 세계적 백신 개발 경쟁을 언급한 뒤 "이번 백신 명칭은 러시아 정부가 국가적 자존심과 전 세계적 규모의 경쟁 일부로서 백신 개발 경쟁을 보고 있음을 상기해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스푸트니크 1호는 발사에 성공하며 세계적 놀라움과 동시에 소련에 맞서던 서방 진영의 경계심을 촉발한 반면 백신 '스푸트니크 V'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려가 더 커 보인다.

수천~수만 명을 상대로 몇개월 간 진행되는 임상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성급한 백신 등록과 접종은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백신 명칭에 대해 "냉전 시대 우주 경쟁에서 소련이 성공했다고 비유한 것과 비슷한 움직임"이라며 "일부 과학자는 러시아가 안전보다 국가적 위신을 우선에 두고 있다고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임상시험기구연합은 최종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때까지 승인을 연기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러시아 정부에 보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독일 튀빙겐 대학병원의 페테르 크렘스러는 로이터에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스티븐 모리슨 수석부회장은 WP에 "스푸트니크의 순간을 돌아보게 한다"며 "러시아가 과학의 영광 시대를 상기하고 선전기구를 최대로 가동하는 것이지만,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시아가 국제적 표준으로 통하는 시험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백신 등록을 한 것은 다른 나라에도 정치적 압력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마크 포즈난스키는 "유용한 뭔가를 하고 있음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성과,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일 때에만 행동해야 한다는 과학적 망설임 사이의 긴장 상태를 모든 나라에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지금까지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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