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코로나19에 폭발 참사까지…설상가상 레바논
중앙정부 무능 다시 드러내…기득권층에 국민 불만 커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지중해 연안 국가 레바논이 4일(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발생한 대폭발로 다시 휘청거리게 됐다.
레바논 적신월사(적십자사에 해당)는 5일 성명을 내고 "지금까지 4천명 이상이 부상당했고,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레바논 정부가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한 가운데 민심이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폭발 배경이 사고인지, 특정 세력의 공격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중앙정부의 무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폭발이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는 약 2천750t의 질산암모늄이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사고일 개연성에 무게를 둔 것이지만 화약 등 무기제조의 원료인 질산암모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음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질산암모늄이 대량으로 폭발한 것이 사실이라면 과거 베이루트의 '쓰레기 대란' 사태를 연상시킨다.
2015년 베이루트에서는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베이루트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장이 포화함에 따라 다른 곳을 물색해야 하는데 정부의 방치로 시내 곳곳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쓰레기로 촉발된 시민들의 분노는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확대됐고 경찰과 충돌로 시위 참가자 1명이 숨지고 400여 명이 다쳤다.
쓰레기 대란과 이번 폭발 참사는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파의 갈등 등으로 빚어진 사회·정치적 난맥상과 무관하지 않다.
레바논 정치는 종파 간 조화를 명분으로 독특한 권력 안배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각각 맡고 있지만 일종의 '권력 나눠먹기' 방식으로 엘리트층의 부패와 무능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미 레바논은 장기간 지속한 경제 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다.
레바논 국민은 높은 실업률과 물가 급등, 빈부격차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올해 6월에는 베이루트, 트리폴리 등 주요 도시에서 민생고 시위가 벌어졌다.
현재 레바논의 국가부채는 연간 국내총생산의 170%나 되고 실업률은 50% 가까운 수준으로 추정된다.
또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국민이 물가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레바논은 공식적으로 1달러를 1천507 파운드와 교환하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암시장에서는 8천 파운드를 넘을 정도로 치솟았다.
레바논은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지하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동안 경제에서 금융업, 관광업 등에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관광업 타격 등으로 경제 회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국가인 레바논은 면적이 약 10만400㎢로 한국 경기도와 비슷한 작은 국가다.
인구는 약 680만명이고 이들 중 2011년부터 내전 중인 시리아 난민이 150만명, 팔레스타인 난민이 50만명으로 추정된다.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레바논은 1975년부터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내전으로 국토가 황폐화했다.
2006년에는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한 달 동안 전쟁을 치렀으며 당시 양측에서 당시 양측에서 1천3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noj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