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흙수저' 논쟁…"가난하면 고고학 공부도 못하나요"

입력 2020-08-04 15:49
중국의 '흙수저' 논쟁…"가난하면 고고학 공부도 못하나요"

농민공 자녀의 고고학과 진학에 중국 온라인서 논쟁 '후끈'

"'류수아동' 출신이라면 출셋길 택해야" vs "자신의 꿈 추구해야"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중국에서 가난한 농민공 집안 출신인 한 우등생의 대학 진학을 놓고 때아닌 '흙수저 논쟁'이 벌어졌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4일 보도했다.

이들 매체에 따르면 중국 중부에 있는 후난(湖南)성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인 중팡룽은 올해 중국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서 750만 만점에 676점을 받아 후난성 전체에서 4등을 차지했다.

최고 수준의 성적과 더불어 그가 '류수아동'(留守兒童)이라는 점은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여러 언론 매체에는 그를 다룬 기사가 실렸다.

류수아동은 농촌 출신으로 도시로 돈을 벌러 나간 농민공 부모의 자녀를 말한다. 외롭게 남아 고향 집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류수아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의 류수아동은 무려 6천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극심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기도 하며, 혼자 불을 피우다가 화재로 사망하는 등 류수아동과 관련된 가슴 아픈 사연이 끊이지 않는다.

류수아동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고득점을 받은 중팡룽은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 고고학과에 지원했고, 곧바로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중팡룽의 고고학과 진학 소식이 알려진 후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때아닌 흙수저 논쟁이 벌어졌다.

경영대, 공대 등 대기업이나 IT 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잘 나가는' 학과를 선택하지 않고, 취업마저 쉽지 않은 고고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스스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면 미래 소득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면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은 "인문학은 서민 출신의 학생에게는 너무 사치스러운 학문"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자신의 진로를 둘러싸고 뜻밖의 열띤 논쟁이 벌어지자 중팡룽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자신의 결정을 옹호했다.

중팡룽은 "어릴 적부터 나는 역사와 유물을 좋아했고, 판진스(樊錦詩)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이것이 내가 고고학과 진학을 택한 이유이며, 여러분의 성원에는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판진스는 세계 최대 석굴사원인 둔황(敦煌) 막고굴(莫高窟) 연구에 일생을 바친 중국의 저명한 여성 고고학자이다.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던 둔황은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린 오아시스 도시이다.

광둥(廣東)성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중팡룽의 부모는 딸의 행복만이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딸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의 우상인 판진스도 중팡룽에게 자신의 자서전과 함께 친필 편지를 보내 "꿈을 잊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라"고 당부했다.

중국의 저명한 고고학자들과 중국 전역의 박물관, 대학 등도 소셜미디어에 잇달아 글을 올려 중팡룽을 지지했다. 중팡룽에게는 이들이 보낸 고고학과 관련된 책, 물품 등이 쏟아졌다.

베이징일보의 칼럼니스트 판청은 "사람들은 중팡룽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꿈을 좇는 사람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대신에 무시하고 비웃는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일 것"이라고 썼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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