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대책] 공공재건축 나오자마자 흔들…서울시 "안될 것" '찬물'(종합2보)

입력 2020-08-04 16:00
[8·4대책] 공공재건축 나오자마자 흔들…서울시 "안될 것" '찬물'(종합2보)

(서울·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김지헌 홍국기 기자 = 정부가 4일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 핵심 내용으로 강남 재건축 활성화를 노린 공공참여형 고밀 재건축 방안을 제시했지만 초반부터 판이 깨지는 형국이다.

그동안 주택 공급방안을 협의해 온 정책 파트너인 서울시가 대놓고 "공공재건축은 안될 것"이라며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날 수도권 주택 공급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시행에 참여하는 공공재건축 개념을 제시했다.

공공재건축은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참여해 사업을 함께 이끌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재건축이다.

용적률과 층수제한 등 도시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을 기존 가구수보다 2배 이상 공급하게 하고, 증가한 용적률의 50~70%는 기부채납으로 환수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용적률을 300~500% 수준으로 완화해주기로 했다. 용적률 500%는 준주거지역 용적률 상한이다. 이를 위해 종상향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고밀 재건축을 통해 기부채납 받은 주택의 절반 이상은 장기 공공임대로 공급하고 나머지는 무주택, 신혼부부 및 청년 등을 위한 공공분양으로 활용한다.

원래 용적률 250%이면서 조합원 분양과 일반분양 가구수가 500가구인 재건축 단지가 용적률을 300%까지 올린다고 하면 가구수는 100가구 늘어나는 데 그친다. 100가구 중 50가구는 기부채납받아 임대로 돌리고 나머지 50가구는 일반분양된다.

하지만 이 단지가 용적률을 250% 더해 총 500%까지 받으면 가구수는 500가구가 늘어나게 된다.

늘어난 500가구 중 250가구는 일반분양되고 나머지 250가구는 기부채납받아 절반씩 공공임대와 공공분양으로 배분된다.

지금까지 정부는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해 강남 집값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나 주택 수요가 높은 강남에서 주택 공급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컸고, 이에 공공재건축에 한해 규제를 완화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이 발표된 지 몇 시간도 안돼 서울시가 정면으로 정책 내용을 폄하하고 나서 추진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이날 오후 서울시청에서 별도 브리핑을 열고 "공공재건축은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느냐라는 실무적인 퀘스천(의문)이 있다"며 "애초 서울시는 별로 찬성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단언했다.

김 본부장은 35층으로 돼 있는 서울시내 주택 층수제한 규제도 완화해주지 않을 방침을 시사하기도 했다.



건물 층수제한은 서울시가 도시계획을 통해 운용하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는 용도지역별로 용적률이 규정돼 있지만 층수제한과 관련한 규제는 별도로 없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층수규제 완화에 대해 'NO'를 외치면 정부로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공공재건축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임에 따라 서울에서 이를 추진할 동력도 없어지게 된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지자체의 인허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부와 서울시의 재건축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다시 확인된다.

서울시는 공공재건축이 아닌 일반 재건축에도 용적률 등 규제를 풀어줘 고밀 개발을 하게 하고 기부채납을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정부도 일반 재건축에 대한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했지만 막판 당정협의 등을 거치면서 결국 공공재건축에만 용적률 등 규제를 풀어주는 것으로 정리됐다.

당정은 강남 재건축 단지에 규제를 대거 풀면서 많은 혜택을 줬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강남 집값만 더 오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컸다.

재건축 조합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기는 모양새는 아니다.

정부가 나름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했지만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을 기부채납하고, 그 절반은 공공임대로 채운다는 대목에선 과연 공공재건축을 받아들인 보람이 있겠느냐는 회의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조합원간 첨예한 갈등이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재건축 사업의 특징상 가뜩이나 의견이 분분한 재건축 사업에 LH 등이 개입했을 때 사업이 원활히 잘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는 시선이 많다.

서울시가 태도를 누그러트리고 정부에 협조하고, 조합들이 공공재건축을 적극 선택해 사업이 추진된다고 해도 남은 문제가 있다.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층수제한 규제를 뚫고 초고층으로 지어질 길이 열리게 되면 주변 집값이 다시 불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건축 규제 완화로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장이 과열되는 조짐을 보이는 재건축 단지나 인근 단지에 대해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위헌 시비가 더 커질 수 있다.

토지 거래를 규제하는 제도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쓴다는 것은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라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재건축이 완공까지 상당 기간 걸릴 수밖에 없는데 당장 집값이 불안하다고 해서 재건축 단지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한다면 언제까지 이를 유지해야 하느냐도 문제다.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송파구 잠실동이 5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지만 해당지역에선 실거주 사유를 대고 주택을 구입하는 현금부자로 인해 신고가 기록이 갱신되고 있고 그 인접지역도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7월 서울 집값 통계를 보면 송파구는 0.91% 올라 25개 자치구 중 상승률 2위를 차지했고 강남구도 0.70% 상승해 서울 평균(0.71%) 수준을 유지했다.



더욱이 층수제한이 풀리면서 한강변 아파트들이 50층 이상 올라가면 한강 조망은 오롯이 이들 최고급 아파트에 양보해야 한다.

한번 바뀐 스카이라인은 되돌릴 수 없다. 서울시가 7년 가까이 재건축 조합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25층 층수제한을 고수한 이유다.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반응은 그리 적극적이진 못하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공공참여형 재건축은 우리 아파트와는 안 맞는 것 같다"며 "LH나 SH는 저가 중심, 소형 위주의 집을 많이 짓고 있어 특단의 반대급부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민간주택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용적률을 높여서 임대주택을 많이 짓는 등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중대형이 많은 압구정동에는 안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공공재건축 방식에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아파트 단지는 학교가 근처에 있어 높이가 높아지면 일조권 문제가 있고, 50층으로 올리더라도 과도하게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세대수가 많아지고 지하 주차장도 부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측은 관심을 보였다.

추진위 관계자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우리 아파트는 추진된 지 너무 오래돼 공공재건축이라도 빨리 추진해야 한다"며 "재건축 속도를 낼 수 있고 투명성도 보장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50층 공공 재건축 허용…서울조달청·서울의료원 부지도 개발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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