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부른 유동성 랠리…안전·위험자산 둘다 좇는다
금값 사상 최고치 연일 경신…거래량도 치솟아
증시도 활황…달러 약세가 뒷받침
"수익률 높다면 달려가는 돈…유동성 '과잉 기대감' 계속"
(서울=연합뉴스) 은행팀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각국이 돈 풀기에 나서자 실물 경제 대신 자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위험자산인 주식이 동시에 상승하는 반면, 역시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화 가치는 2년여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돈은 안전·위험자산 가릴 것 없이 조금이라도 수익이 난다 싶으면 금방이라도 쫓아 움직이는 모습이다.
경기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 저금리,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 파죽지세로 치솟는 금값…거래량도 최고치
최근 파죽지세로 가격이 치솟는 자산은 금이다.
2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KRX 금시장에서 1㎏짜리 금 현물의 1g당 가격은 7만8천490원이었다. 전 거래일에 비하면 0.61% 내린 가격이지만, 올해 1월 2일에 비해 약 38% 비싸다.
최근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금값은 지난달 14일 최초로 종가 기준 7만원을 돌파한 데 이어 2주 만인 28일 8만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 금값은 3월 중순 1,471달러까지 떨어졌지만 곧 예전 수준을 회복했고, 6월 중순 이후 상승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같은 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은 전날보다 온스당 1% 오른 1,985.9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사상 처음으로 2,0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거래도 급증하고 있다. KRX 금시장의 거래량은 지난달 28일 약 501㎏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거래대금은 404억원으로 역시 최고 기록이다.
가격 상승에 금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에도 돈이 몰린다. 금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인 'KINDEX 골드선물 레버리지(합성H)'는 지난달 31일 종가 2만2천540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연초보다 약 56% 올랐다.
'KODEX 골드선물(H)'은 종가 1만3천750원으로, 같은 기간 약 27% 상승했다.
◇ 주가도 고공행진…"유동성 '과잉 기대감' 계속"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주식 거래 역시 활황이다. 3월 중순 1,500선이 무너졌던 코스피지수는 지난달 31일 2,249.37에 마감했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가 국내 증의 핵심 매수 주체로 부상했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전체 신용융자 잔고는 지난달 24일 사상 처음으로 14조496억원을 넘어섰다. 13조원을 넘어선 지 불과 14일 만이다.
이런 현상 역시 국경이 없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뉴욕증시는 3월 말 이후 40% 이상 올랐다. 지난달 31일에도 초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호실적에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각각 대표 격인 금과 주식은 보통 수익률이 반대로 움직이지만, 이처럼 동반 상승하는 것은 이례적인 대목이다.
김선태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중에 유동성이 엄청나게 풀렸기 때문에 과거의 트레이드오프(상충) 관계가 깨졌다"며 "펀더멘털이나 기대치보다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낫다고 하면 돈이 몰려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기 회복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실질금리 마이너스,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돈이 실물 투자나 소비로 이어지는 대신 자산시장으로 움직인다는 분석이다.
그는 "각국이 재정·통화정책이 유동성을 확장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 보고 시장별로 과잉 기대감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달러 가치 2년여만에 최저…"분산투자 수요는 여전"
이런 현상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은 달러화 약세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를 들고 있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금·주식 등에 대한 투자 수요가 커진다.
국제 원자재 가격은 달러를 기본으로 거래되는데,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이들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글로벌 투자자금은 아시아 신흥국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달 30일 기준 92.945까지 내려갔다. 이는 2018년 5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사실상 제로 금리의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안에 연준이 이 완화 기조를 되돌릴 가능성도 낮게 전망되면서 외환시장 투자자들이 계속해서 달러 가치 하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31일 달러당 1,191.3원까지 내려갔다. 장중에는 1,186.6원까지 하락하며 연일 1,180원대 안착을 시도하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최근 몇 달 간 환율 곡선을 보면 고점이 1,220원에서 1,210원으로, 1,200원대로 점점 내려오고 있고 이달 들어서는 1,190원 하향 이탈을 시도하는 빈도가 잦아졌다"며 "여전히 원/달러 환율 하락 압력이 강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달러 수요는 여전하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주요 은행의 7월 말 달러예금 잔액은 총 496억달러다. 한 달 전보다 27억 달러 늘었다.
이들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2월말 369억 달러에서 3월 말 434억 달러로 급증한 데 이어 7월까지 5개월 연속 증가세다.
원/달러 환율이 3월에 달러당 1,296원까지 치솟은 이후 최근까지 하향 곡선을 타고 있어 달러를 사들일수록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로 7∼8월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했는데도 투자자들이 달러를 매수해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달러가 약세지만 코로나19 장기화 가능성에 분산투자 수요가 여전히 많다"며 "자산의 10∼20% 정도를 금이나 달러로 구성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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