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감동시킨 '기적 생환' 칠레 광부 33인, 씁쓸한 10년후 현실
AFP "트라우마·질병 등 시달려…광산 복귀도 쉽지 않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칠레 광산 붕괴로 매몰됐던 광부 33인이 두 달여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돼 전 세계에 감동을 안겼다.
희망과 연대의 상징이 되며 '영웅' 대접을 받았던 33인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31일(현지시간) AFP통신은 칠레에서 광부 몇 명을 직접 만난 후 그들이 10년 전 전 세계에서 쏟아진 관심에서 멀어진 채 트라우마와 질병, 씁쓸함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칠레 북부 코피아포의 산호세 구리 광산이 붕괴된 것은 지난 2010년 8월 5일이었다. 19∼63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광부 33인이 매몰됐다.
모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사고 17일 후 생존자 확인을 위해 뚫고 내려간 구조대의 드릴에 "피신처에 있는 우리 33명 모두 괜찮다"는 쪽지가 함께 올라왔고 그로부터 52일 후 무사히 전원 구조됐다.
지하 700m 어둠 속에서 69일을 머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 소량의 비상식량을 33인이 공평하게 나누면서 서로 믿고 의지한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줬다.
지상으로 나온 광부들에게 전 세계에서 인터뷰와 강연 요청 등이 쏟아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책과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33'으로도 제작됐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광부들의 생존을 알린 쪽지를 직접 썼던 호세 오헤다(57)는 코피아포에서 월 40만원 미만의 연금으로 가족들과 생활하고 있다. 중증 당뇨병으로 목발에 의존해야 하는 그의 의료비로도 부족한 금액이다.
그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며 "사람들은 우리가 많은 돈을 번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칠레 정부에게 광부 1인당 11만달러(약 1억3천만원)의 보상금을 주라고 했지만, 정부가 항소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시 19살의 최연소 광부였던 지미 산체스는 사고 이후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러 가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고 거절했다. 매몰된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광부들의 심리 치료를 돕던 심리학자 알베르토 이투라는 고용주들이 이들을 다시 지하 갱도로 내려보내는 것을 꺼린다고 말했다.
영화 '33'에서 반데라스가 연기했던 마리오 세풀베다는 다른 이들보다는 상황이 괜찮다. 동기부여 강사로 곳곳에서 강연하고 있고, 지난해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상금으로 자폐증 아이들을 위한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세풀베다는 "지하에서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노래하고 공상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했다"며 "그러나 가족들이 분열을 조장했다. 밖으로 나온 이후 우린 자신만을 위한 개인이 됐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세풀베다처럼 10년 전 경험으로 강연을 하고 돈을 버는 광부들은 다른 이들의 시기를 받기도 한다. 광부 33인은 더는 함께 모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산체스는 판권 계약 등에 관여한 변호사들이 광부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했다며 "그들이 많은 돈을 가져가고 우리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풀베다 역시도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는 "광산 입구에서 근무 교대를 하는 꿈을 꾼다. 광산으로 돌아가서 내 경험도 나누고 싶다. 난 광부의 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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