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괴리된 日정부 코로나 인식…"감염 3·4월보다 완만"
하루 확진자 2.3배로 늘었는데 긴급사태 선언 안 하고 느슨한 대응
방역 조치 희생하며 경기 부양…의사회 "휴업 요청해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고 늘고 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감염 상황에 관해서는 3·4월의 증가 속도보다 약간 완만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감염 확대의 속도가 증가하고 있으면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 역시 전날 열린 회의에서 "감염 확산은 3월, 4월 속도보다 약간 완만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속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우려할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우려할 지역이 있다면서도 전체적인 감염 확산 속도가 3·4월만큼은 아니라는 뜻을 표명한 셈이다.
하지만 확진자 추이를 보면 이런 발언에 수긍하기 어렵다.
NHK와 일본 주요 언론이 집계한 확진자 통계를 보면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월 말 기준 약 950명이었고 4월 말에는 약 1만5천명이었다.
3·4월 두 달 사이에 1만4천여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온 셈이다.
이번 달 1∼30일 사이에는 신규 확진자가 1만6천여명 나왔다.
3·4월에는 하루 평균 230명 정도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이번 달에는 하루에 530여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확진자 수 증가 속도로 보면 7월이 3·4월의 2.3배 수준이다.
감염 확산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확진자 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3·4월보다 최근에 감염이 완만하게 확산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베 정권의 주요 인사가 현실과 괴리된 발언을 짜 맞춘 듯 반복한 것은 느슨한 코로나19 대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달 들어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지만 아베 정권은 "감염 위험을 컨트롤하면서 단계적으로 사회·경제활동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싶다"(스가 관방장관)며 비상조치를 피하고 있다.
말로는 양쪽을 병행한다고 하고 있으나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사실상 방역 조치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국내 여행 비용 일부를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정책을 시행 중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속도가 훨씬 낮았던 2월 말에 전국 초중고 일제 휴교를 요청하고, 4월에 긴급사태를 선포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비교적 강력한 대응을 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일본의 법체계 내에서 가능한 가장 강력한 조치를 하더라도 코로나19 사태를 종료할 수 없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 전문가는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도쿄의사회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가 보상책을 제시하며 지역을 한정해 강제력이 있는 휴업을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하면 벌칙을 가할 수 있도록 '신형인플루엔자 등 대책특별조치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아베 정권의 앞뒤가 맞지 않는 대응에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일본공산당, 사민당 등 주요 야당은 헌법 53조에 따라 임시 국회 소집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에게 제출했다.
헌법 53조는 중의원이나 참의원 전체 의원의 4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내각이 임시 국회 소집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임시 국회가 소집되면 코로나19 대응이나 최근 이어진 폭우 대책 등에 관한 야당의 추궁이 예상되기 때문에 아베 정권이 이에 응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야당은 2015년과 2017년에 헌법을 근거로 임시 국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아베 내각은 2015년에는 응하지 않았다.
2017년에는 소집 요구 약 3개월 후 입시 국회를 열었으나 개원하자마자 아베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는 바람에 야당이 국회에서 내각의 실정을 추궁할 수 없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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