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잠정합의 걷어차 위원장까지 물러난 민주노총, 자기모순 아닌가
(서울=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잠정 합의안이 23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잠정 합의안은 정세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지난 5월에 출범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40여일간의 논의 끝에 마련한 결과물이다. 노사가 고용유지에 함께 협력하고 정부는 전 국민고용보험 도입, 국민취업 지원제도 시행 등 사회안전망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연내에 만든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용 대란이 눈 앞에 펼쳐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노사가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되 불가피한 실직에는 정부가 제도적으로 최대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가 깃든 합의인데 끝내 물거품이 돼서 매우 안타깝다. 잠정 합의안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거부해온 민주노총 스스로가 먼저 요구한 '코로나 위기 극복 원포인트 대화 기구'에서 어렵사리 만들어낸 것이라서 더욱더 그렇다.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쪽에서 대화의 결과물을 스스로 걷어찬 꼴이다.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총 대의원 과반수가 잠정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명시적인 '해고금지' 조항이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반대파들은 경영계의 요구로 '휴업수당 감액' 같은 조항이 들어갔는데 민주노총 핵심 요구사항인 해고금지는 '고용유지'라는 추상적인 용어로 대체된 것에 불만을 쏟아냈다고 한다. 코로나19 경제 위기에도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없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요 급감으로 매출이 줄어 버티다 버티다 불가피하게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명시적 해고금지가 현장에 그대로 적용되면 기업이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뒤에는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오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노사 대화에서 상대방이 수용 가능한 선에서 합의안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노사정위원회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한 노사정 완전체의 모습으로 출발해 국민적 기대가 컸다. 국가적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만한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면 비단 코로나19 위기 극복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회적 대화로 외연을 넓힐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잠정 합의안을 부결시키며 고립의 길을 선택했다. 국내 최대의 노동자단체로 위상이 높아진 민주노총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도출해낸 잠정 합의안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다면 앞으로 누가 민주노총을 진정한 대화의 파트너로 생각할 것인지 스스로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과 김경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는 잠정 합의안 추인 실패의 책임을 지고 24일 동반 사퇴했다. 민주노총은 올해 연말 차기 지도부 선거 때까지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하며 당분간 장외 투쟁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증유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모두가 어렵게 버텨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지나치게 선명성을 앞세우는 강경파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 요구에 부응하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보다 무려 3.3% 감소할 만큼 우리 경제는 최악이다. 6월 실업률이 같은 달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가장 높을 만큼 실업자도 넘쳐난다. 어렵더라도 노사가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 비록 민주노총이 빠졌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 당사자들은 고용유지와 사회적 안전망 확충에 힘써주기 바란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