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직격탄에…결국 무산된 국내 항공사간 첫 기업결합

입력 2020-07-23 08:57
코로나 직격탄에…결국 무산된 국내 항공사간 첫 기업결합

제주항공, '빅3' 꿈꿨으나 코로나에 발목…"피해 우려 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국내 첫 항공사간 기업 결합으로 주목받았던 제주항공[089590]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이 끝내 무산됐다.

작년 말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제주항공은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이스타항공 인수에 나섰으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결국 양해각서를 맺은지 7개월여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M&A 작업은 작년 12월 수면 위로 드러났다.

작년 11월 진행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1조원가량을 더 써낸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에 밀려났던 제주항공은 한달여만인 작년 12월18일 이스타항공 인수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제주항공은 작년 9월 말 이미 이스타항공에 M&A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은 당시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이스타항공 지분 51.17%를 695억원에 매매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맺고 이스타항공의 경영권 인수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스타항공은 보이콧 저팬과 국제유가 급등 등으로 경영난에 시달리며 이미 작년 9월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였지만, 당시만 해도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시너지를 낼 경우 제주항공이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업계 '빅3' 자리를 굳힐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다며 규모의 경제 실현을 강조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양사 M&A에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제주항공이 작년 12월31일 예정됐던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한 차례 연기한 데 이어 1월31일에도 또다시 SPA 체결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 안팎에서는 이스타항공의 재무 상황이 열악해 실사와 SPA 체결에 시일이 걸리는 것으로 해석했다. 제주항공도 "이스타항공 인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불거졌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세계 하늘길이 막히는, 말 그대로 사상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이스타항공은 임직원의 2월 급여를 40%만 지급했다.

제주항공은 장고 끝에 지난 3월2일 당초 예정보다 150억원 줄어든 545억원에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하고 SPA를 체결했다. 계약 자체를 무산시키기보다 M&A를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데 양사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양사는 당시 항공편 축소 운항 과정에서 일부 항공편을 공동 운항하면서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코로나 사태가 더 악화하며 이스타항공은 3월9일 국제선 운항을 중단한 데 이어 같은달 24일에는 국내선 운항마저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셧다운'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스타항공이 자체적으로 회생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심사 6주 만인 4월23일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에서는 인수 작업에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지분 취득 예정일(4월29일)을 하루 앞두고 '미충족된 선행 조건이 모두 충족될 것으로 합리적으로 고려해 당사자들이 상호 합의하는 날'로 지분 취득 예정일을 변경 공시했다.

이후 선행 조건 이행을 놓고 양측의 공방이 이어졌다.

이스타항공은 지난달 26일 신규 이사·감사를 선임하기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하며 제주항공을 압박했지만, 제주항공은 선결조건 이행이 우선이라며 체불임금 해소 등을 요구했다. 이스타항공은 3월부터 아예 임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한 탓에 체불임금만 250억원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도 불거졌다.

결국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소유한 이스타항공 지분 38.6%를 모두 이스타항공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당장 제주항공이 지분 헌납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데다 오히려 계약 변경을 지적하고 나서며 해결의 물꼬를 틀지는 못했다.

셧다운과 체불임금 해소, 구조조정 지시 등에 대한 책임 공방이 불거지며 양사의 갈등은 더욱 커졌다. 그동안 이 의원 일가를 정조준해 온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투쟁 방향을 틀어 양사 대표간 통화내용 녹취록과 간담회 회의록 등을 공개하며 제주항공을 규탄했다.



제주항공은 지난 7일 "이스타 측에서 계약의 내용과 이후 진행 경과를 왜곡 발표해 제주항공의 명예가 실추됐다"며 신뢰 훼손에 유감을 표했고, 이 의원 일가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에 앞서 이달 1일에는 이스타항공에 "10일(10영업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모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스타항공은 직원의 임금 반납 동의, 리스료·정유료 등 감면 협의 등을 통해 미지급금 해소에 나섰지만, 제주항공은 결국 선결조건 이행 마감 시한(15일) 다음날인 16일 "계약 해제 조건이 충족됐다"며 사실상 '노딜' 선언을 예고했다.

제주항공의 2대 주주인 제주도의 부정적인 입장과 제주항공 내부 직원들의 반대 기류 등도 영향을 미쳤다.

제주항공은 이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와 중재 노력에도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M&A가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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